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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것 아닌 의학용어 Jul 01. 2022

뒷간에서 걸린  중풍은 약도 없다는데...

의학용어 이야기,  중풍, CVA, stroke

"풍을 맞다" 왜 유독 중풍만 '맞다'라는 동사를 사용할까요? 감기에 걸렸다고 하고, 암은 생겼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하지, 코로나에 맞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맞다', '맞았다'라는 동사를 쓰는 병은 중풍밖에 없습니다. 사실 '중풍에 맞다'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한자어로 '중풍'이란 말자체가 '풍(바람:風)' 에 '맞다(가운데:中)'라는 뜻입니다.  '가운데 중'자는 '딱 가운데에 정확하게 맞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했다'처럼 말이죠.  따라서, '풍에(을) 맞다', 혹은 '중풍에 걸렸다'라고 해야 옳은 표현입니다. 여기서 '풍에 맞다'라는 말은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상황을 뜻합니다. 아래는 박완서 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 중풍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뒷 간에서 넘어지신 채 못 일어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사람을 불렀다. … 누군가 지나가던 사람이 연통을 해서 식구들 이 온통 황황히 달려 나가 할아버지를 간신히 사랑채에다 뉘었다. ‘동풍’이라고 했고, 동풍은 못 낫는 병이 라고 했다. 특히 뒷간에서 걸린 동풍에는 약이 없다는 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풍으로 인한 급작스런 응급 상황이 덤덤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글 중의 동풍은 중풍을 의미합니다. 중풍이나 동풍이나 오래된 말입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뇌혈관사고(CVA, CerebroVascular Accident)와 가장 유사합니다. 그래서, 뇌혈관사고(뇌혈관 질환)를 뇌졸중(腦卒中)이라고 번역합니다. 중풍과 마찬가지로  역시 '가운데 중'의 뇌졸임에 주의하세요.  '증상'이라고 생각해서 '뇌졸'이라고 쓰면 안 됩니다.  


동양에서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도 이런 상황을 apoplexy라고 불렀는데, apoplexy라는 단어가 ‘맞아서 쓰러졌다 struck down by violence’라는 뜻입니다. 동양과 서양에서 모두 맞아서 쓰러진다고 표현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apoplexy는 현대의학에서는 중풍처럼 사용되지 않는 용어입니다. 중풍을 일상 용어로는 스트록(stroke)이라고 합니다. stroke 역시 맞았다(strike)에서 온 말입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풍 맞았어” 하는 느낌의 말이죠.  중풍이나 스트록(stroke) 혹은 apoplexy나 정확한 병리기전을 모를 때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질환을 통칭하던 말이었습니다. 중풍외에도 stroke이 쓰이는데, Heat stroke이라고 하면 과도한 더위로 인해 체온조절을 못해 가자기 쓰러지는 열사병을 말합니다.  동양에서는 풍(자연)에 '맞았다'라고 생각했고, 서양에서는 신에게 '맞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쓰러지는 상황을 보고 동양에서는 풍(자연)에 '맞았다'라고 생각했고, 서양에서는 신에게 '맞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the said sheriff was so stricken on the right side, with such a palsy or stroke of God's hand (whatsoever it was), that for the space of eight years after, till his dying day, he was not able to turn himself in his bed
The Acts and Monuments of John Foxe(1870), By John Foxe, George Townsend


위의 예를 보면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상황을 "palsy or stroke of God's hand"라고 표현했습니다.


뒷간에서 걸린 동풍은 약도 없다는데...

박완서 선생님의 글 중에 '뒷간에서 걸린 동풍은 약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도 어렸을 때 화장실에서 힘주면 중풍으로 쓰러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 배변 시 힘을 주면 뇌와 척수에 걸리는 압력이 증가합니다.  코를 막고 배변 시처럼 힘을 주는 동작을  발살바 조작(Valsalva maneuver)이라고 합니다. 이 동작이 배변시 힘을 주는 동작과 유사한데요, 이렇게 숨을 참고 배에 힘을 주면 뇌와 척수의 압력이 증가해서 신경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혈압이 몹시 높거나 동맥류가 있는 사람이 대변을 볼 때 너무 무리하게 힘을 주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면 뇌출혈, 지주막하 출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서울 아산병원).


뇌와 척수의 압력을 증가시키는 발살바 조작


화장실에서 힘을 줄 때뿐 아니라 화장실에 갈 때도 문제입니다. 화장실이 밖에 있거나, 방안과 온도 차이가 심한 경우 반대로 혈관이 수축하면서 뇌경색, 혹은 심근경색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화장실이 침실보다 극심하게 추운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장실 가다가 발생하는 혈관질환이 노인의 주요 사망원인이라고 합니다.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노년이 되면 새벽 운동, 특히 환절기의 새벽 운동은 극심한 온도 변화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극심한 온도 변화와 혈관질환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가는 뇌출혈이, 추운 겨울 화장실에 가다가는 반대로 혈관이 막히기 쉬운데요, 뇌혈관이 터지는 것은 뇌출혈(cerebral hemorrhage), 뇌혈관이 막히는 것은 뇌경색(cerebral infarction)이라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 중풍의 이 두 가지 형태, 출혈과 혈관이 막히는 상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배운 용어들을 정리해봅니다.


CVA, CerebroVascular Accident


Stroke
apoplexy
Valsalva maneuver
cerebral hemorrhage
cerebral infar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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