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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담

의료인의 행복

최근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꽤나 가슴이 먹먹하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바로 강원도 인제에서 홀로 의원을 하고 있는 원장님이 출연하셨는데요, 결혼을 해도 자신을 인제를 떠날 수 없어 주말부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인제에 하나뿐인 의사라 환자들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아! 누구나 꿈을 꾸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큰 벽 앞에 무릎을 꿇는 의사 선생님들. 초라하게 강남에 개원을 해서 아이들을 대치동 학원에 보내는 많은 원장님들에 비해, 그 노총각 원장님은 진정으로 위풍당당한 개선장군, 진정한 승리자롤 보였습니다. 그렇게 멋진 의사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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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의사 손사막 선생의 대의 정성은 동양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불립니다. 대의정성의 마지막 단락에는 손사막 선생의 전통의사의 윤리관에 대한 핵심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의사가 윤리적 삶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1500년 전 중국을 살았던, 손사막 선생은 자비로운 마음이 뛰어나고 실력 있는 의사를 만드는 것을 넘어, 행복한 사람을 만들 것이라고 ‘대의정성’의 마지막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어둠에서 구하는 이 자비로운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이라고요? 윤리와 행복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모든 윤리는 개인의 행복, 사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윤리적인 삶을 살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강제적인 희생이 될 뿐입니다. 도대체 윤리적이라고 해서 어떻게 행복해진다는 것일까요?


공교롭게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마지막 부분 역시 윤리, 기술과 지식(예술), 그리고 행복(삶) 사이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이를 어기지 않는다면, 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명예롭게 여겨지며 삶과 예술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노라.

삶(life)과 예술(art)을 누린다는 말은 행복하게 즐긴다는 뜻입니다. 삶은 말 그대로 인생이고, 예술은 여기서 의료를 의미합니다. 삶과 예술(의료)을 윤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았습니다. 즉, 직업적으로 인생적으로 양쪽에서 모두 충만하게 인생을 즐길 것이란 뜻입니다. 그는 ’ 삶의 즐거움은 개인의 행복을 반영하는 반면, 예술의 즐거움은 의술과 지식을 실천하는 지속적인 특권과 기쁨을 상징합니다.’라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도덕적 완성이야말로 훌륭한 의사(아트)가 되며, 그를 넘어 인생(삶)의 행복에 이르는 열쇠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역시 그의 윤리 코드의 마지막을 행복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하는 것에는 다양한 콘텍스트가 존재합니다. 헤도네는 즐거움이나 쾌락을 의미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헤도네적 행복은 종종 소비주의나 즉각적 만족의 추구와 연관됩니다. 마카리오스는 하늘, 초월적 존재로부터의 축복입니다. 그 유명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의 말씀,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도다”에서 사용된 그리스어가 바로 마카리오스입니다. 이는 주로 신의 은총이나 운명의 호의로 인한 행복을 나타냅니다.

에우다이모니아는 단순한 행복을 넘어선 ‘인간의 번영’을 의미합니다. 이는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덕(아레테)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달성됩니다. 에우다이모니아적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행복은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에서 옵니다.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삶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감이 바로 에우다이모니아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죽기 전에 내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느끼려면 무엇을 추구했어야 했을까요? 유흥일 수도, 술일 수도, 돈일 수도,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이러한 자신만의 가치의 실현에서 오는 충만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확실한 가치를 세우는 것이 첫 번째고, 그 가치를 위해 노력하면서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을 느끼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의료인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현대사회는 특히 가치관이 붕괴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가 없으니, 어떤 가치로도 교환될 수 있는, 그러나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돈이 숭배되는 아이러니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니체의 말처럼 우리 자신의 가치 창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확고한 가치를 실현시켜 나갈 때 진정한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의료인의 본질적인 가치에 관하여 손사막은 환자 치료를 넘어 환자를 아끼는 마음, 자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자비를 통한 의료를 실천할 때 두 번째, 즉 행복이 충만해진다는 것이 대의정성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의료인의 가치(도덕성)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가치를 실천해 나갈 때 의료인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 인제의 원장님은 꼭 행복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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