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뇌엽(brain lobe)에 이상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는 온통 의학용어만 떠오를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무심코 만지고 있을지도 모를 귓볼(earlobe), 말랑말랑것이 둥글게 튀어나왔죠? 그 부드러운 살덩어리가 바로 인류 최초의 'lobe'입니다. 2000년 전 그리스 사람들이 lobos(λοβός)라고 부르기 시작한 바로 그것 말이에요. 이 단어의 핵심은 '둥근 모양'입니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튀어나온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둥글게 튀어나온 것을 모두 lobe라고 합니다. 특히 요리에서 빵이나 쿠키, 버터 덩어리 등등 둥글게 튀어나온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가을 단풍잎을 보면 여러 개의 둥굴게 튀어나온 부위가 있지요? 이를 역시 lobe, 옆편(leaf lobe)이라고 해요. 각각의 엽편은 독립적이면서도 중심부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단풍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의 잎사귀들이 모두 이런 lobe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식물이 광합성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진화시킨 절묘한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웃긴 건, 이 단순한 '둥근 모양'이라는 개념 때문에 지금 의사들이 "간좌엽(left hepatic lobe)", "폐우상엽(right upper lobe)", "전두엽(frontal lobe)" 같은 복잡한 말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귓볼이 온몸으로 번져나간 것처럼요.
뇌는 크게 전두엽(frontal lobe), 두정엽(parietal lobe), 측두엽(temporal lobe), 후두엽(occipital lobe)의 4개 엽으로 나뉩니다.
전두엽: 인격, 판단력,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CEO의 사무실'
두정엽: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정보 처리 센터'
측두엽: 청각과 언어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 허브'
후두엽: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이미지 프로세서'
각 엽은 독립적 기능을 가지면서도 복잡한 신경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폐는 우상엽(right upper lobe), 우중엽(right middle lobe), 우하엽(right lower lobe)과 좌상엽(left upper lobe), 좌하엽(left lower lobe)으로 구성됩니다. 오른쪽 폐가 3개 엽, 왼쪽 폐가 2개 엽인 이유는 심장이 왼쪽에 위치하여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각 엽은 독립적인 혈관과 기관지 공급을 받아, 한 엽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엽들이 기능을 대신할 수 있어요.
간은 우엽(right lobe)과 좌엽(left lobe)으로 나뉘어있습니다. 우엽이 좌엽보다 6배 정도 크며, 각 엽은 수천 개의 간소엽(hepatic lobule)이라는 육각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런 모듈형 구조 덕분에 간은 놀라운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갑상선 Thyroid Gland: 목 앞쪽에 있는 나비 모양의 기관으로, 좌엽(left lobe)과 우엽(right lobe)이 가운데 협부(isthmus)라는 부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을 만들어냅니다.
전립선 Prostate Gland: 남성에게만 있는 기관으로 좌엽(left lobe), 우엽(right lobe), 중엽(median lobe)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방광 바로 아래에서 요도를 둘러싸고 있어요.
유방 Mammary Gland: 방사형으로 15-20개의 유선엽(mammary lobe)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마치 꽃잎처럼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이에요.
신장 Kidney: 콩팥이라고도 불리는데, 바깥쪽 피질(cortex)과 안쪽 수질(medulla)이 엽 구조(renal lobe)를 이루면서 소변을 만들어냅니다. 아래 그림에 보면 빵조각 처럼 생겼죠?
췌장 Pancreas: 머리(head), 몸통(body), 꼬리(tail)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각각이 기능적인 엽(pancreatic lobe) 역할을 합니다. 인슐린을 만드는 중요한 기관이에요.
흉선 Thymus: 가슴 한가운데 있는 면역기관으로, 좌엽(left lobe)과 우엽(right lobe)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크다가 나이가 들면서 작아지는 특이한 기관입니다.
다음에 단풍잎을 보거나 식빵을 자를 때, 그리고 테니스 경기에서 아름다운 로브샷을 볼 때, 우리 몸 안에서도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수많은 lobe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세요. 의학용어 참으로 하찮게 여겨지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