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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것 아닌 의학용어 Jul 04. 2022

의학용어도 모르는 천박한 사람들

의학용어, 우리들의 수사학

Non tam praeclarum est scire Latinum quam turpe nescire
라틴어를 모르는 것이 추하지 않은 만큼 라틴어를 아는 것도 고상하지 않다


의사들의 악필은 유명하지요. 예전엔 진료기록부를 복사해서 보기도 어려웠고, 복사를 해도 일반인들이 내용을 알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악필에다 그들만의 암호 같은 언어로 적혀있으니까요. 왜 쉬운 영어, 혹은 한국어를 놔두고 이상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딱 이렇게 입고 가되 새거 티 안 나게 운동장에서 희뿌연 흙먼지 얼룩 좀 묻혀주고 가야 됨. 인력소 문 열자마자 쿰 쿰 하면서 가래빼는 모션 취해주고 딴데 둘러보기 전에 곧장 정수기 직행해서 노란 맥심 하나 타고 시작. 무조건 커피 봉다리로 젓는게 기본. 그리고 커피 하나 들고 직원앞으로 가야함. 이 일련의 과정 거치면 숱한 수렁 거쳐온 “꾼” 들도 ‘저놈 저 까데기좀 치다 온 놈인가’ 싶은 눈빛 보낼거임.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일용직 작업장에서 무시받지 않는 법이란 글이에요. 실제 공사장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번역이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일본어인지 한국어인지조차 모르겠는 단어들로,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하지요.  의사들의 용어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일본어를, 하나는 라틴어를 기반으로 한다는 차이만 있습니다.  

이렇게 쓰는 말 자체가 다르다 보니,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초보티가 나게 마련이죠. 그들만의 용어는, 숙련도의 상징이자 훈장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확실히, 그들만의 문지방을 높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비전문가들이 특수한 용어라는 장벽 때문에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정보의 불균형은, 자신의 일들에 대한 특권(대체 불가능, 혹은 대체의 어려움)을 부여함으로써 직업적 권위를 갖게 되지요. 옛적에는, 글이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글을 안다는 것, 라틴어를 안다는 것, 한자를 안다는 것은, 특권 이상의 것을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자산어보와 산소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보면 그림이 하나도 없어요. 일종의 생물도감인데 글로만 적은 도감입니다. 정약전이 책을 만들면서, 정약용에게 그림을 넣으면 어떨까 하고 문의했다고 합니다. 뜻밖에 정약용은, ‘성인의 뜻’을 거론하며 글로써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그림을 그려 넣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는, 알기 쉬운 것은 천하고, 알기 어려운 것은 귀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당시 실학의 얼리 어답터였던 정약용이 이런 생각을 해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유럽의 교양 있어 보이는 학자들 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772년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 (Carl Wilhelm Scheele)는 산소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셸레는 자신이 발견한 산소를 “fire air”라고 불렀습니다. 3년 후, 나중에 라보와지에(Lavoisier)는 이 물질을 acid former라는 뜻의 그리스어 oxygen이라고 불렀습니다. 편하게 acid former나 fire gas 대신 오래된 그리스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것을, 허영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편, 수소 hydro-gen은 원래 무엇이었을까요? 예, water gas 였습니다. 원래는 gas라고 불리다가 1780년에 펠리스 폰타나에 의해 water-gas가 되고, 1783년 또다시 우리의 작명가 라보와지에에 의해 멋진 이름인 hydrogen이란 이름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water보다 hydro가 더 멋지게 들리나요? 만약 예전의 제 어린 아들이 ‘하이드로~ 어쩌고저쩌고’를 듣는다면, 멋지기보다는 뭔가 포켓몬스터 이름 같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소 불순한 의도가 의심되는, 그리고 실용적이지 않은 이런 태도나 권위를 지켜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현대까지도 이어집니다.


책 제목이 "라틴어 수업"이라고?

얼마 전에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라틴어 수업’이란 책을 봤어요. 세상에 세상에 ‘라틴언 수업’이란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책의 표지는, 정말 보그 병신체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표지 맨 위에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있고 그 아래 'Lectio', 그리고 한글 책 제목 라틴어 수업, Linguae, Latinae 순서로 쓰여있습니다. Lectio는 아마 수업(강의)이고, Linguae는 언어, Latinae는 라틴어이겠지요. 라틴어를 배우고 알면 지적인 삶이 되고 아름다운 삶이 되리라는 것인가요? 정말 천박한 허영의 극치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이 들어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책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내용도 알차고, 위로도 되고, 위트도 있고, 매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 의학용어 클래스에 부교재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틴어 수업'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Quidquid Latine dictum sit altum videtur
라틴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고상해 보인다


이런 문장을 보았을 때 어찌 현대를 사는 지성인의 배알이 꼴리지 않겠습니까? 한 웹사이트에서는 의학용어 사용에 대하여 이렇게 비꼬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오함을 흉내내기(pseudo-profundity)’가 의사들과 속물(snob)들에게서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라틴어의 쓸모라고는 이런 속물 짓을 하는 사람들을 놀리는 용도밖에는 없다.”

"abusing Latin for pseudo-profundity remains very popular with doctors, snobs, etc. One of the few practical applications of a knowledge of Latin is making sport of people who do this."

(https://rationalwiki.org/wiki/Quidquid_latine_dictum_sit,_altum_videtur)


의학용어는 권위주의와 허영의 산물입니다. 그냥 단지 그 이유예요. 옛날 책, 그리스어, 로마어라도 몇 자 이야기해야 식자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써왔습니다. 다행인 것은 의학분야에서도 오래된 라틴어 대신 영어로 된 의학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예를 들어 nephrolithiasis라는 라틴어 대신 kidney stone이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1년 사이에 nephrolithiasis와 kidney stone이라는 용어가 제목에 들어가 있는 논문의 개수를 펍메드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각각 85개와 92개가 검색됩니다. 최근 5년으로 검색하면 각각 426개와 344개가 검색됩니다. 최근 10년으로 검색하면 각각 805개와 544개가 검색됩니다. 라틴어(nepholithiasis)와 일반영어(kidney stone)의 비율은 10년 누적으로는 8:5로 라틴어 사용이 두배가까이 많지만, 최근 5년으로 한정하면  4:3으로 그 차이가 줄어들고, 최근 1년만 보면 일반영어 사용이 라틴어 용어(nephrolithiasis)사용 빈도를 역전 합니다. 점차 세계적인 의학논문에서 일반영어의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참 바람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행히 라틴어의 사용을 줄어드는데, 아직도 속물들은 라틴어 용어를 사용하며 뽐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학용어가 그들의 유일한 인생의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라틴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실제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언어 철학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어는 생각의 도구이며 생각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학작품이나 철학을 이해하려면 그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의학용어는 언어가 아니며 사유체계를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의학용어는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새로운 어휘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옛날 유럽에도 권위와 허영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죠.


Non tam praeclarum est scire Latinum quam turpe nescire
라틴어를 모르는 것이 추하지 않은 만큼 라틴어를 아는 것도 고상하지 않다


그러나, 보그체를 모르면 품위있다고 할 수 없죠.

그레이스하고 엘레강트한 라틴어를 바탕으로한 의학용어,  여러분의 고상한 품격을 볼드하고 서틀하게 표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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