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dially: 발렌타인데이, 끔찍하고 정중한 고백

발렌타인 데의 유래와 고백

by 단어의 뒷모습

거리가 온통 붉은색이다. 매대마다 초콜릿이 산처럼 쌓여 있는 걸 보니 발렌타인데이가 머지않았다. 달콤한 상술이라고 혀를 차면서도, 막상 저 붉은 하트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하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처럼 연인들은 가슴이 설레고, 솔로들은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실제 발렌타인 데이는 가슴 아픈 날이다.


아름다운 성당에서 결혼서약을 하고 있는 두 연인.
이상하게도 커다란 성당을 채우고 있는 것은 이 두 연인과 인자한 모습의 사제뿐이다.
사제는 키스를 명령하며, 연인의 얼굴엔 함박 웃음이 퍼진다.
축하의 박수와 환호성 대신 갑자기 들리는 군화의 발자국 소리.
사제는 급히 두 연인을 뒷문으로 도망보내고, 자신은 성당에서 군인들을 맞이한다.


밸런타인데이와 두 연인(15세기) 1480 image, depicting St. Valentine performing marriage


이 기묘한 전통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3세기 로마에 다다른다.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전쟁에 나갈 병사들이 가족에 연연한다며 결혼을 금지시켰다. 그런데 한 사제가 몰래 커플들의 결혼식을 주례해주었다. 결국 이 사실이 로마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날, 2월 14일 군인들이 성당에 들이닥쳤다. 결국 그 사랑의 사제는 처형되었다. 그가 성 발렌타인(St. Valentine) 이었다.


발렌타인데이는 사랑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사제의 죽음을 기리는 가슴 아픈 기념일이다. 발렌타인데이 카드에 그려진, 화살에 꿰뚫린 심장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랑을 말할 때 습관처럼 하트 모양을 그린다. 아무리 큐피드의 화살이라지만, 심지어는 이 끔찍한 무기가 심장을 관통하는 그림을 보며 로맨틱하다고 느낀다. 꽤나 기괴한 미적 감각이다. 만약 연인이 보낸 편지에 심장 대신 간이나 소장에 화살이 꽂힌 그림이 그려져 있다면 어떨까. 당장 경찰을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장은 다르다.



심장만큼은 화살을 맞아도 되는, 아니 화살을 맞아야만 하는 장기로 여겨진다. 고대인들은 심장(heart)이 마음(heart)이 머무는 곳이라고 믿었다. 뇌세포의 전기 신호가 사랑을 만든다는 건 너무 건조하지 않은가. 쿵쾅거리고, 조여들고, 가끔은 찢어질 듯 아픈 그 물리적인 통증이 느껴지는 곳이 심장이니까.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명치 끝이 아픈 일이라는 걸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Cordially

영어 표현에 '심장을 당신에게'라는 직접적인 단어가 있다. 주로 편지 말미에 사용되거나, 초대장에 사용되는 'cordially'다. Cordially. 보통 격식 있는 편지 끝에 Sincerely처럼 쓰는 말이다. Cordially 쪽이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 단어는 심장을 뜻하는 라틴어 Cor에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편지 끝에 Cordially yours라고 적는 건, 단순히 진심을 담아라는 말로는 부족해서 내 심장을 당신에게 꺼내 보이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빨간 잉크로 인쇄된 심장에도, 까만 잉크로 쓰여진 Cordially에도, 그 안에는 3세기 한 로마 사제의 비극과, 화살을 맞아도 좋다는 무모함과, 나의 가장 중요한 곳을 꺼내 보이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랑한다는 건 결국 그런 것인가 보다.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그 아픔을, 그게 너라면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선언이다.


발렌타인데이, 독자들에게 나의 사랑과 진심을 전한다.


Cordially,


zno_0032.jpg Gustav KlimtYear1907–1908, Kiss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