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곁을 꼭 지켜주시기를
세 살.
엄마의 품에 안겨 햇살을 손에 쥐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던 아이. 그 아이가 집 앞 도랑에 빠졌다. 심정지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119 구급대가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고, 의료진이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했고, 기적처럼 맥박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더 큰 병원에서의 긴급 수술이 필요했다. 병원은 충청권 상급종합병원 9곳에 전화를 걸었다. 1분, 1초가 한 시간, 하루처럼 흐르는 동안, 9곳 모두 아이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송을 기다리던 아이는 맥박이 돌아온 지 두 시간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2024년,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있던 어느 4월의 저녁 충북 보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의대 증원 발표와 함께 의료계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또 의료계 파업이라도 하면 어쩔까 걱정이 된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통증이 느껴진다. 수년 전 의사를 만나지 못해 차가운 응급실 바닥에서 수 시간을 고통에 몸부림쳤던 기억이 있다. 환자 입장이 되어보니 알겠다. 내가 고통 속에서 치료를 기다릴 때 가장 절실했던 건, 수능 문제를 기막히게 잘 푸는 천재가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실재(attending)하는 평범한 의사였다.
어텐딩(Attending), 의사의 다른 이름
'어텐딩', 당신에게 손을 뻗는다는 약속
미국 병원에서는 주치의(Attending physician)를 흔히 어텐딩(Attending)이라고 부른다. 왜 하필 '어텐딩'이라는 말을 쓸까? 어텐딩은 라틴어 'Ad(향하다)'와 'Tendere(뻗다)'가 합쳐진 말이다. 즉, '누군가를 향해 온 마음과 몸을 뻗는 행위'다. 환자의 곁에 머물며(Attendance) 온 마음을 기울이는(Attention) 그 고단한 일. 단순히 기술자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 곁에 현존하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 그게 진짜 의사의 본질임을 이 단어는 품고 있다.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 4월 환자를 향한 손을 잠시 거두었다.
어텐딩은 누군가를 향해 온 마음과 몸을 뻗는 행위
어텐딩 없는 병원이라니, 형용 모순이다.
정원을 늘리면 질이 떨어진다며 병원을 떠나는 하얀 가운의 뒷모습들. 상위 0.1퍼센트의 천재들만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그 논리가,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료의 질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진심이겠지. 하지만 당시 정부와의 갈등으로 거리로 나간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환자를 향해 뻗는 손이 아니라 천천히 거두어지는 손을 보았다. 당시 그래도 환자는 보아야 하지 않겠냐며 진료실을 열었던 의사들은 배반자요, 결국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악당들이었을까?
똑똑함은 의심한 적이 없다. 다만 아픈 사람 곁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올랐을 뿐이다.
의사의 본질은 결국 '베드사이드(Bedside)', 즉 환자의 침대 맡을 지키는 데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임상의사라는 말의 임상(臨:임할 림, 床: 침대 상) 역시 침대 옆을 지킨다는 뜻이다. 의료의 질(Quality)이란 건, 일단 환자가 의사를 만날 수 있어야 성립되는 말이다. 환자를 길바닥에 방치해 두고 논하는 의료의 퀄리티가 무슨 소용인가.
차가운 응급실 바닥에서 내 곁에 있어줄 의사를 기다렸다. 그게 어텐딩, 임상의사의 일인 줄 알았는데, 그 믿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흔들리게 된 걸까.
의사의 권위는 전교 1등 성적표가 아니라, 가장 아픈 곳으로 마음을 뻗어주는 그 손길에서 나온다.
그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