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치뼈, 천추, Sacrum
새벽 2시,
저녁의 상쾌함이 어느새 스산한 추위로 바뀌어 버린 시간. 적막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나직이 돌아가는 노트북의 팬소리뿐.
미국에 온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이 시간의 정적은 낯설다. 한국이었다면 창밖으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나 멀리서 들리는 취객의 웃음소리라도 섞여 들었을 텐데, 여기는 소름 끼치도록 고요하다. 그 고요가 가끔은 등 뒤에서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허리를 펴려고 일어서는데 골반 깊숙한 곳에서 '윽'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손을 뒤로 뻗어 엉덩이 바로 윗부분, 그 딱딱한 뼈를 꾹꾹 눌러보았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어쩌면 매일 이 작은 뼈 마디마디에 긴장을 채워 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든 꼿꼿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 얕보이지 않으려는 기운이 늘 그곳에 머물다 통증으로 남는다.
천골 Sacrum.
Sacrum. 의사들은 엉치뼈를 그렇게 부른다. 라틴어 'os sacrum'에서 온 말인데, 직역하면 '성스러운 뼈(Holy Bone)'다. Sacrum은 신성하다는 뜻의 Sacred와 뿌리가 같다.
피식 웃음이 난다.
성스럽다니.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영악한 유머와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신에게 제물을 바칠 때, 맛있는 살코기는 자기들이 슬쩍 챙기고 뼈와 지방만 골라 태웠단다. 그러면서 신에게 미안했는지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부위는 아주 신성한(Sacrum) 것이니, 신께 드립시다."
결국 인간이 먹기 싫은 부위를 신성함으로 포장해 떠넘긴 셈이다.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내 모습이 겹쳐 보여 헛웃음이 났다. 우리도 가끔은 내밀한 욕망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며 살지 않나.
또 다른 설은 이 뼈를 '부활의 씨앗'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육신이 썩어 한 줌 흙이 되어도 가장 단단한 이 뼈만은 살아남아, 훗날 영혼이 다시 육체를 입을 때 중심축이 된다고 믿었다. 인류의 거창한 부활이 그 위대한 심장이 아니라, 엉치뼈에서 시작된다니, 왠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체중을 버텨내느라 비명을 지르는 이 자리가 성역이라니. 신성함이란 건 저 높은 성당의 첨탑 끝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 엉덩이 틈새, 가장 비천하고 눅눅한 곳에 박혀 있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삶의 진짜 무게를 받아내는 건 늘 그런 곳들이었다.
화려한 이력서나 매끄러운 영어 발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몸 전체를 지탱하는 이 둔탁한 뼈 같은 것들. 쓸모없어 보이고 쑤시기만 하는 이 통증이, 사실은 내가 오늘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신성한 증거일지도 모르니까.
내 몸속에 아주 작은 Sanctuary(성소) 하나를 품고 사는 기분이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오직 나만 아는 이 뻐근한 성역.
내일은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다. 아니, 조금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차가운 침대 속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내 엉덩이 근처에 있을 그 고귀한 뼈를 한 번 더 가만히 쓸어보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 그것이 신성함이다.
오늘도 고생했다. 나의 성소.
오늘 내 마음에 심은 단어
Sacrum: 천골, 엉덩이뼈, Sacred와 같은 유래. 영어로 holy bone이라고도 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