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ecdoche: 어머니

by 단어의 뒷모습

미국에 와서 한 달에 한두번 하는 부모님과의 통화는 꽤나 신경을 써야 한다. 시차를 계산하고, 바쁘지 않은 시간을 맞추다 보면 사실 그 이상 자주 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은 지금 몇 시지. 손가락으로 더하고 빼다가, 그냥 핸드폰을 집어든다.

두 번의 신호음. 세 번. 그리고 연결되는 순간, "저예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리는 어머니 목소리.

"밥은 먹었니?"

안녕, 도 아니고. 잘 지내, 도 아니고. 일은 어때, 도 아니고. 밥.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밥을 먹어요."

생각 없이 퉁명스레 내뱉는다.

"아직 안 먹었어? 때맞춰 챙겨 먹어야지."

"바빠서요. 알아서 먹을게요."

수화기 너머로 짧은 한숨이 들릴 때쯤, 나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귀에서 살짝 떼어놓는다.


나는 굶주림을 실감해 본 적이 없다. 내게 끼니를 거른다는 건 그저 바쁘거나 귀찮아서, 혹은 체중 관리를 위한 자발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 “밥은 먹었니”도 안부라기보다 잔소리로 먼저 받아들여진다.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다는 감각 — 그건 내 삶에서는 상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6.25 전쟁의 잿더미를 건너온 부모님에게 밥은 관념이 아니라 실존이었다. 오늘 하루 버텼다는 증거. 아직 여기 있다는 증거. 그러니 안부를 묻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당연히 '밥'이었다.


수사학에 시네도키(Synecdoche)라는 말이 있다. 제유법. 빵을 달라고 할 때 실은 식사 전체를 원하는 것처럼,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하는 수사법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함께(syn) 받아들인다(ekdoche)'고 표현했다. 그래서, 시네도키는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과, 차마 뱉지 못한 말을 동시에 껴안는다.


"밥은 먹었니." 이 말은 시네도키다.

오늘 아프지는 않았니, 너무 외롭지는 않았니, 울지는 않았니, 잘 살고 있니.

그 모든 안부를 꾹꾹 눌러 담아 다섯 글자로 압축한 것.

먹었다는, 그저 '잘 먹었다'는 그 짧은 답이 당신들의 마음을 편하게 했으리라.

"잘 먹었어? 그럼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채 1년도 안 되어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그 뒤로 전화 너머로 밥을 먹었냐는 말을 듣지 못한다.

그저 생각이 나면 하지 못했던 말을 중얼거려 본다.


네, 먹었어요.

...

덕분에

임영숙 밥 (https://artnedition.com/artwork/B51AL00264/)


Synecdoche
/sɪˈnɛkdəki/
사물의 부분으로 전체를, 혹은 전체로 부분을 대신하는 비유법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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