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udade: 아버지

사우다지(saudade) 의미: 부재에 관한 아련한 그리움

by 단어의 뒷모습

가방 속에 숨겨 놓은 사랑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검은 가방은 늘 묵직했다. 학생들이 선물한 사탕이며, 먹다 남은 센베이, 가끔은 누가 선물했는지 모를 작은 장난감까지. 아버지는 그걸 그냥 아껴두셨다가, 퇴근길에 쟁여 오셨다. 어머니는 '평생 가게에서 뭐 새것을 사오는 법이 없어'라고 입을 삐쭉 내미셨지만, 아버지를 제일 목놓아 기다리신 건 어머니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아버지의 귀가를, 그리고 검은 가방을 기다렸다.

아버지에게는 늘 뭔가 재밌는 것이 있었다. 동전이 귀 뒤에서 나타났고, 손수건이 막대기가 됐다. 악기를 집어 들면 노래가 됐고, 연필을 집어 들면 만화가 됐다. 무엇보다 그 낡고 검은 가방 속에는, 늘 다디단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내가 퇴근을 하고 현관에 들어서면, 우리 아들이 팔을 활짝 벌리고 달려온다. 운전으로 무겁던 허리가 어느새 가벼워지고, 나는 아들을 번쩍 들어 올린다. 버둥거리며 내려온 아들은 어느새 가방을 열고 바닥까지 뒤적인다. 직장에서 남긴 이런저런 간식을 가방 깊숙이 숨겨놓은 것을 알고 있다.

가방을 뒤지던 작은 아들의 손에 구겨진 초콜릿 하나가 쥐어진다. 새것 좀 사 오라는 아내의 핀잔이 등 뒤로 들리지만, 아버지는 그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다. 저녁 식사 전에 먹지 말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등 뒤로하고, 나는 아버지의 가방 속에서 찾은 초콜릿을 쥐고 의기양양하게 달려간다. 재빨리 초콜릿을 까서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내 손에는 먹다 남은 초콜릿이 녹아내리고 있다.


퇴근길 현관에 서 있던 건 나일까, 아버지였을까. 손 안의 초콜릿은 이미 녹아 사라졌지만, 내 손엔 그리운 아들의, 그리고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있다.


포르투갈어에는 다른 언어로는 좀처럼 옮겨지지 않는 말이 하나 있다. 사우다지(Saudade).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고도 계속 떠올리게 되는 감정. 어원을 따라가면 고독에 이른다. 무언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건, 내 곁에 그가 영영 부재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쓰다듬는 일이다.


아들을 위해 간식을 먹지 않고 낡은 가방에 찔러 넣는 이 구차한 반복. 이 구차한 반복이 서늘한 부재의 공간에 온기를 채워 넣는다


Saudade
/sawˈda.dʒi/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Honore Daumier, “The Kiss,” oil on panel, 1845, Musee d’Orsay


"가방을 뒤지던 작은 아들의 손에 구겨진 초콜릿 하나가 쥐어진다. 새것 좀 사 오라는 아내의 핀잔이 등 뒤로 들리지만, 아버지는 그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이 문장하나에 두개의 화자와 시점을 담아보았습니다. 에널라지(enallage)라고 할까요? 전반부는 내가 아버지로, 후반부는 내가 아들로 시점이 바뀝니다. 영화에서 화면을 디졸브시켜 전환하는 느낌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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