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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사엄마 Jan 13. 2017

토해서 먹은 약 부작용이 구토?

약의 아이러니 - 약의 효능과 부작용이 같다면?

겔포스, 알마겔, 노루모... 구역질과 구토 증상에 효능이 있다는데 정말?


사회생활 초년생일 적, 회사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사회 초년생들에게 회식은 쉽지 않습니다. 층층시하 시집살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많은 직장 상사 분들과 식사 아닌 식사를 해야 하는 자리니까요. 기억에 지금도 남아 있는 회식이 있습니다. 그 날은 유난히 회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거의 30-4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회식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중에서 과장 이상급이 70-80% 정도 되는 자리였습니다. 


이사님, 상무님을 비롯한 임원 분들이 많이 있던 자리였고, 군대식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었기에 술은 기본인 회식 자리였습니다. 결국 술을 안 마시려고 했으나, 마실 수밖에 없었고 속이 좋지 않아 무척이나 거의 구토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러다가 속 탈 나겠다. 이거라도 먹어"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제게 내민 것 겔포스였습니다. 겔포스와 알마겔과 같은 겔(gel) 제제들은 위산을 중화시키고, 콜로이드 현탁액 상태로 전체적으로 음식물이 역류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우웩!" 


겔포스를 먹자마자 그 자리에서 구토를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구역질과 구토를 해서, 옆에서 보다 못한 팀장님이 얼른 집에 가라고 보내주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겔포스와 알마겔과 같은 형태의 위산분비 억제제를 먹지 못합니다. 




겔포스 사용설명서에는 구역 구토에 효과가 있다는데... 난 먹고 구토를 했다고!!


겔포스엠 사용설명서에 보면 분명히 효능 효과에 구역, 구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구역질이 나서 겔포스를 먹었는데 구토를 했습니다. 분명히 구토 증상에도 사용하는 약인데 말입니다. 구토 증상에 먹는 약을 먹고 구토를 한 어이없는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구토 증상에 먹는 약을 먹고 구토했습니다...


그런데 분명 약효에 적혀있는 이런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정말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피임약을 복용했는데 임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피임에 실패해서 그런 것인지, 호르몬에 영향을 주어서 그런지는 상황에 다른 것 같습니다...) 또한 통증을 억제하기 위해 먹은 진통제가 알레르기 반응 등으로 인해 오히려 더 통증을 키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증상을 완화시키려고 먹은 약이 오히려 해당 증상을 크게 키우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드문 경우이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 약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구토 증상 때문에 먹은 겔포스. 하지만 이걸 먹고 그 자리에서 엄청나게 토했다 ㅠㅠ 


사용설명서에 적힌 효능과 효과가 전부는 아니다


제약회사에서는 의약품 하나를 놓고 볼 때 다양한 적응증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적응증이 많으면 많을수록 의약품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적응증은 각종 데이터에 의해 식약처에서 허가를 해야 합니다. 그 데이터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100% 적용되는 것이 아닌, 기존 약제에 비해 좀 더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때문에 적응증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게 딱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까닭에 약효로 적힌 증상 때문에 약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약을 복용하기 전에 사용설명서를 보는 건 무척이나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증상일 뿐, 내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효능효과에서 앞에 적힌 것들이 가장 신뢰할만한 약 사용 증상


보통 의약품의 효능 효과가 다양하게 기재되어 있는 약의 경우, 증상 때문에 약 먹었다가 증상이 더 심해지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 효능 효과 부분에서 거의 끝 부분에 있는 증상들에 대해 약을 먹었을 경우 이런 일들이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약 사용설명서를 볼 때 가장 앞서서 적힌 효능효과 2-3가지에 대해 신뢰하고 약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아무래도 뒷부분에 적힌 효능 효과의 경우 상대적으로 임상 자료나 데이터가 앞에 적힌 증상에 비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약은 그 자체로도 매우 역설적이다


약은 매우 적은 양으로도 몸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파서 약을 먹었다가 더 심한 부작용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약으로 병을 키울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약이란 존재를 얕보게 될까 봐 부작용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의외의 몸의 변화들을 통해 약의 존재감을 알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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