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자의 리뷰] -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
시대의 전환을 이끌어낸 역사적인 기후 소송이 펼쳐진다!
리처드 J. 라자루스 지음. 김승진 옮김
이 책의 제목과 헤드 카피를 보고 요즘 환경 문제에 심취해 있는 나는 환경 관련 공부를 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안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런! 시작부터 뭔가 이상했다. 미국의 정치 얘기를 신나게 하더니 법이라고는 ’원고와 피고‘라는 단어의 차이밖에 모르는 내게 미국의 법률 제도를 풀어 놓는다.
책은 요즘 흔치 않은 매우 빡빡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내가 예상한 이야기가 아닌 모르는 이야기를 주입받는 상황이 펼쳐졌다.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이야기의 도입인 4장 까지 힘겹게 낯선 단어들과 싸웠다.
그만 읽을까하다 5장 ’이산화탄소의 전사들‘에 진입하자 갑자기 전개가 빨라진다. 잘 만들어진 법정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고 매우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결말을 아는 드라마지만 보고 또 보고 싶은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은 내게 아주 신나는 소설이었고, 설득력 있는 글쓰기에 관한 교본이었고, 이성적이며 효과적인 변론을 위한 말하기의 지침서다.
책은 1999년 미국의 환경 단체 변호사 조 멘델슨의 청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청원의 내용은 “온실 가스는 청정대기법상 환경보호청의 규제 대상에 속하는 대기오염물질이니 환경청은 적극적으로 이 온실 가스를 규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청원은 미국 대법원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환경법 사건이라 불리며 환경 관련 중요한 판결을 이끌어내는 첫 단추가 된다. 1999년 청원서를 내고 2003년 환경청이 기각한 청원이 대법원 상고심까지 올라가 2007년 4월 당시 대법관 9명 중 다섯 명이 찬성에 표를 주며 ‘자동차 배기가스로 대표되는 온실 가스는 환경보호청의 규제대상이니 환경보호청은 이를 규제하여 지구 온난화를 늦추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 승소했지만 환경청을 상대로 한 이 소송은 만만한 재판이 아니었다. 환경 단체는 물론 매사추세츠 주 정부까지도 나서며 당시 미국의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모였다. 이 소송은 환경법과 관련, 확실한 이슈가 될 소송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변호사들도 매우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되었다. 책은 영리한 사람들이 더 영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미국의 소송은 법정에서 정식으로 구두변론 전에 판사들을 설득하기 위한 ‘서면 변론’부터 시작된다. 변호사들의 두뇌는 서면 작성부터 풀가동된다. 자신들의 의견을 글로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게 관철시키는 지난한 변론 과정은 이 책의 핵심이다. 나는 변호사들이 판사와 대법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서면을 작성하고 구두 변론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논리를 짜는 과정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상고청구서의 주 작성자인 리사 헤이즐링은 ‘뜻은 좋지만 차별성이 없어서 대법원에서 심리가 거부되는 수천 개 사건중 하나가 아닌 특별한 사건이 되게 하려면 대법관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상고청구서라도 즐거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더 생기 있고 생생하게 기억할 만하게 글을 써야 한다”며 개성과 촌철살인으로 가득한 상고청구서를 작성한다.
상고심에서 대법관들을 상대로 구두 변론을 맡은 짐 밀키는 9차례의 예행 연습을 거치고도 변론 전 자신에게 주의 사항을 적어 복기한다.
”에두르거나 꾸미려 하지 말 것
경로를 유지할 것
경로로 돌아갈 것
정확히 질문된 부분에 대답할 것
눈을 맞출 것“
이런 태도는 상대에게 넘어가지 않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말하기의 기본이다.
분명 환경을 공부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인데 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교훈을 얻은 셈이다. 이 판결이 후에 파리기후협약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동차 배기 가스로 대표되는 온실 가스는 당장 대기 오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미 우리 환경을 지배하고 있으며 배출되고 나면 오래 머문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