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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Aug 12. 2021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장벽은 차별과 공포임을 알려주는 책

[편성준의 리뷰] -『인류, 이주, 생존』

타란티노가 배고프던 시절에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만든 토니 스콧 감독의 『트루 로맨스』엔 아주 짧지만 인상적이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행방을 쫓던 마피아 두목 크리스토퍼 월큰이 그의 아버지 데니스 호퍼를 찾아와 아들의 행방을 심문하자 죽음을 직감한 데니스 호퍼는 마지막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마피아를 약 올린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했지.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 그 과정에서 시실리안들이 무어인(흑인)의 후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러니까 니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흑인들이랑 그 짓을 한 거야. 그때부터 시실리안들의 피가 완전히 바뀌었지. 흑인으로. 하하하."


빙글빙글 웃으며 도발하는 데니스 호퍼를 보고 토퍼 월큰은 너무 화가 나서 처음엔 헛웃음을 흘리다가 결국 부하의 권총을 뽑아 그의 머리통에 대고 쏜다. 


"내 손으로 직접 살인을 한 건 1984년 이후로 니가 처음이야."


라는 말을 남기면서. 


무엇이 그토록 그를 화나게 만들었던 걸까. 시실리안이 흑인의 자손이라는 것은 자신의 혈통에 열등한 이민족의 침입 흔적이 있다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데도 이런 순진무구한 순혈주의가 이민자들을 도둑이나 괴물, 심지어 병원균 같은 존재로 몰아갔던 왜곡의 시작이라 지적하는 사람이 바로 『인류, 이주, 생존』의 작가 소니야 샤다. 그는 뉴욕에서 인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던 자신의 독특한 출신 배경을 이력으로 서구 열강 세력들이 그동안 자신의 영토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차별하고 배격했는지를 논픽션 도서 집필로 밝혀낸다.


쿠엔틴 타란티노 각본, 토니 스콧 연출의 『트루 로맨스』엔 이탈리아 시실리안의 혈통을 비웃는 장면이 나온다. 인종 서열화와 차별이 어떤 식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지 보여주는 


출판사 메디치에서 이번 달치 리뷰를 쓰라며 보내온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땐 한숨부터 나왔다. 책이 너무 두꺼웠던 것이다. ‘지난번 책은 그렇게 안 두껍더니 이번엔 왜 이렇게 페이지 수가 많은 거야?’라고 투덜거리며 첫 페이지를 열었는데 웬걸, 의외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저자의 필력이 좋은 것은 물론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와 함께 바둑판점박이나비를 보러 남부 캘리포니아 산미겔산맥에 함께 오른 카밀 파르메산이라는 나비 전문가에 대한 외모 묘사는 ‘담청색 눈에 검은 곱슬머리를 갈기처럼 늘어뜨린 파르메산은 원더우먼의 현실판이다. 원더우먼이 황금 밧줄과 투명 비행기 대신 흙과 벌레를 좋아하고 지역 방언으로 말한다면 말이다.’ 같은 식이다. 


그렇다고 소니아 샤가 인물 묘사에만 능한 작가는 아니다. 그는 인류의 이주(migration)가 숨쉬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생존 원칙이며 환경 변화에 따른 아주 오래된 대응이면서도 그동안 얼마나 철저하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과학적이면서도 공신력 있는 사료들을 통해 소상하게 알려준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렇게 방대한 자료들을 다 리서치하고 또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는지(생물지리학, 보존생물학, 유전학, 인류학, 과학사 등을 아우르는) 그 학자적 능력과 구성력은 가히 레오나르도 다빈치급이다. 그는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근거로 외국인 혐오가 억지로 만들어진 사상임을 입증한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이주자들이 지역 여성을 강간하길 아주 좋아한다는 매체들의 모함이 즐비했고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주자들은 병균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폴란드에서는 한 잡지가 “이슬람의 유럽 강간”이라는 헤드라인을 커버스토리로 올렸고 미국도 대통령부터 직접 나서서(당연히 트럼프지 누구겠어요?) 이주자들이 세금을 많이 쓴다는 누명을 씌웠다.      


책을 읽을 땐 늘 두 페이지에 걸쳐 메모를 하며 읽지만 이번엔 메모할 분량이 세 페이지를 넘어섰다. 그만큼 건질 게 많은 책이었다.


그런데 이런 보도나 소문 뒤에는 수많은 통계자료의 왜곡이 있었다.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진 범죄들은 공격 횟수를 계산하는 방법을 바꾸어 숫자를 부풀렸고 ‘국제 테러리즘으로 기소된 4명 중 3명이 외국 출신’이라 밝힌 미 법무부 보고서는 ‘연쇄살인범의 90%가 쌀밥을 먹는 것으로 밝혀져’ 같은 일종의 허무개그에 가깝다. 그러나 필요하면 뭐든지 꾸며내고 왜곡할 수 있는 게 인간의 역사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식민지적 관점에서는 외국인이 동물이라 생각하는 게 더 마음 편했고 노예상들도 아프리카인을 상품으로 보는 게 당시의 비즈니스 감각이었다. 이런 인종 차별과 서열화의 규칙은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아이큐 테스트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제대로 될 리가 있겠나? 그런데 1920년대 미국 뉴욕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 졸지에 이민자들은 사회 적응이 불가능한 저능아들로 판정을 받았다. 이것 또한 너무 웃기는 코미디였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민자들은 목숨과 미래가 걸린 일이었고 이민 당국은 자신들이 억지로 꾸며낸 일이었으니.  


         

책을 읽으며 귀퉁이를 접기도 한다. 귀퉁이를 접거나 밑줄을 치는 건 언젠가 이 책을 다시 읽겠다는 약속이요 다짐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선 좋은 책일수록 귀퉁이가 두껍다.


어떤 사람과 종이 고정된 장소에 속한다는 생각은 서구 문화에서 역사가 길다. 생물 분류법으로 잘 알려진 18세기 스웨덴의 박물학자 칼 린네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완벽하므로 신이 정해준 위치를 벗어나는 이주는 ‘자연의 질서에 반하므로 재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꼰대 같은 사상에 정치적 목적까지 더해져 이주민들은 계속 박해를 받아왔다. 우리는 2015년 수니파 무장조직 IS의 위협을 피해 가족과 함께 시리아를 탈출했다가 터키 해변에서 엎드려 잠자는 듯한 모습의 시신으로 발견됐던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를 기억한다. 자기 나라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2008년부터 2014년에 홍수나 폭풍, 지진 같은 이유로 매년 2600만 명이 이동했고, 2015년에는 불안정한 사회의 폭력과 박해 등으로 1500만 명 이상이 자신의 나라를 탈출해야 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아일란 쿠르디 사진


소니냐 샤는 『인류, 이주, 생존』을 통해 이제 이주는 현실이며 생존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당신은 이주를 어떤 태도로 바라볼 것이냐고 준엄하게 묻는다. 당장 우리 곁에도 수많은 이주민들이 있다. 이주민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휴머니즘의 새로운 척도가 될 수 있음을 그는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퍼블리셔 위클리》 선정 2020년 ‘베스트 논픽션 도서’.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2020년 ‘베스트 과학기술 도서’에 선정되었고 저자의 테드(TED) 강연인 <우리가 아직 말라리아를 없애지 못한 세 가지 이유>는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나는 가끔 접하는 이런 양심적인 과학 저널리스트 덕분에 조금씩 더 똑똑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만 혼자 똑똑해지는 건 재미없으니 다들 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읽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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