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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Jul 31. 2020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소장의 각양각색 주민 관찰기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한옥에서 살았다. 주택의 불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신혼생활은 꼭 아파트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넉넉하지 않게 신혼살림을 꾸리는지라 새 아파트에 좋은 주거 환경을 갖춘 아파트 전세를 볼 수 없었다. 둘러본 아파트들은 분양한 지 15년은 족히 넘었었고 외관은 언제 칠을 했는지 색이 바래고 오래된 페인트 위로 줄금이 그어져 누가 봐도 낡은 아파트였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 집과 사람은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던가.. 외관, 평수, 구조 다 똑같지만 집에 들어가 보면 천차만별이었다.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에 따라 좁은 집이 더 좁아 보이기도 하고 그 좁던 집이 더 넓어 보이기도 했다. 집을 내놓았으니 잘 나가라고 깨끗이 치워 놓은 집도 있는가 하면 이사 가는데 청소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는지 변기 속이 누렇다 못해 시커먼 집도 있었다. 겉이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집안에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저자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자가 아파트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난 내가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 지인들에게 들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저자이신 김미중 관리소장님이 아파트가 한눈에 잘 보이는 중앙 벤치에 나를 앉혀 놓고 그간 아파트 주민들과 있었던 일들을 쏟아 놓았다.

저자는 20여 년간 아파트 관리소장 일을 하면서 입주민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배려받고 싶으시면 존중해주시죠

당신의 양심은 어디에 두셨나요” 

아파트 정원에 대한 당신과 나의 동상이몽” 

관리 소장은 여러분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도 합니다”        

이 메시지를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더 나아가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아파트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아파트에서 있을법한 일들이 아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주거 공간 "아파트"


 아파트는 공동생활주택인데 내 집안 아닌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곳. 그곳에서 사람들과의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주차장이다. 저자가 제일 첫 장에 주차장 민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나 보다. 

 가장 넓은 자리에 항상 같은 차가 주차되어 있다는 것으로 관리사무소에서 지정석을 내주었냐는 민원을 받으면 난 어떻게 해결해 주었을까? 그런 민원을 제기하는 입주민에게 나는 대뜸 “주차장은 지정석이 아니니 비어있으면 어디나 주차할 수 있는 곳 아닌가요? 그 자리가 탐나시면 지켜보시다가 냉큼 주차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사실 내 차가 작기도 하고 항상 같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싶은 경향이 있어서 넓은 자리에 주차하는 입주민의 태도가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관리소장의 입장에선 민원이 들어왔으니 해결을 해야 했다. 소장님은 주차하는 사람이 누군지 지켜봤다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얌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입주민에게 직접 말하지도 않고 민원을 제기한 입주민의 이야기도 무시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공고문을 붙였다. 아무래도 공고문이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으면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민원을 제기한 사람에게도 공동주택 공간에서 행동을 수정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현명한 방법인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핵심은 공고문의 내용. 민원과 해결방안을 간결하게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소장님의 공고문은 참 탁월하다. 간간히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공고문을 읽을 때 ‘쳇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뭔 소린지’ ‘어쩌라구’ 이런 불만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책 안에서 읽었던 공고문을 읽을 땐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글을 잘 쓰는 소장님이라 이렇게 책도 내셨겠지만 입주민의 입장에 서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한 공고문이었다.      

누구든 큰 집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주차도 넓은 곳에 맘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크기의 아파트에 살고 있고똑같은 크기의 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     

자주 보이는 아파트 주차장 모습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 층간 소음.. 만약 태생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힘들다면 아파트 생활을 선택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층간 소음 문제는 개인적인 다툼에서 무시무시한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극단적인 일들은 뉴스에서나 접하겠지만 층간의 다툼으로 삶이 불편해지고 피곤해진다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책에 언급된 ‘윗집은 어린아이가 셋인데 아랫집엔 수험생이 셋인 집’은 와우~~ 세상에 이런 일이다. 다행히 소통을 하면서 두 집이 규칙을 정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있어 같은 공간에서 큰 갈등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힘겨운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

배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 불편함을 이웃에게 내지른다면 그 순간은 속 시원하겠지만 마주할 때마다 그 불편함은 살면서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웃의 불편한 행동을 무조건 참는 것도 화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0년간 관리소장 일을 하면서 각 집과 집의 문제들을 어떻게 잘 해결했을지 궁금해 에피소드 속에서 계속 찾아보았는데 저자도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이웃 간에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을 당부한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하고자 하는 핵심만 말하기’ ‘감정을 싣거나 구구절절 말하지 않기’ ‘최대한 담백하고 간결하게 말하기’      


 오가며 자주 대화를 나누던 아파트 미화원 아주머니가 계셨다. 성실하시고 좋으신 분이셨기에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반가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어느 날 그만두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유는 지하주차장에 누가 큰 볼일을 봤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개나 고양이 똥이 아닌 사람 똥이라고 하셨다. 너무 더러웠지만 겨우 치우고 올라가는데 계단에 사람 소변이 흥건하게 있어 대걸레로 닦으면서 그만두겠다고 결심하셨단다. 양심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고 해도 정신 바짝 차렸으면 치워야지.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아파트 주민성이 이 정도인가? 밤에 큰 소리 안 나고 부부싸움도 거의 듣지 못해 그래도 의식이 있는 주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한테 정말 큰 충격이었다. 소장님이 소개하신 400원이 아까워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쓰지 않고 투기한 입주민보다 더한 배설물을 투기한 입주민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경력단절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아 관리 소장 일을 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주택관리사 시험 합격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김미중 소장님의 각양각색 주민 관찰기를 읽어보니 난 모난 성격 때문에 안 하길 잘했다 싶다. 시험은 죽어라 공부하면 되지만 관리소장을 하려면 여러 직업을 마스터해야 한다. 화난 사람들 화를 들어주어야 하는 민원 콜센터 직원, 때로는 정신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상담가, 길 잃은 치매 노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보호사로  입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지혜로운 재판관도 되어야 한다. 그 밖에도 너무 많다.  

 현 직업이 관리소장인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관리소장은 이렇게 힘듭니다.” “참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죠?” 이런 것을 이야기하고자 쓴 것이 아니다. 직업상 많은 사람들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봐왔기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가장 좋을지 매일 사람들을 접 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한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함께 타인의 사정다른 입장에 놓인 이들의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쓴 구절에 공감한다.

 아파트, 지극히 개인적 주거 형태에서 타인의 사정,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수많은 지번 중에 같은 지번을 쓰고 있는 엄청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소장님의 바람에 나의 바람도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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