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족의 섬나라 플리마켓 나들이

카페 하루하나에서의 두 번째 <반짝반짝 착한가게>

by 은노
1427763902780.jpeg 삼양 검은 모래해변에서 포효하는 공룡

공룡, 당시 아들의 최애 장난감이었다.

3월의 첫 마켓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첫 경험일 것들 뿐일 터라 정신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여

아들을 본가에 맡겨두고 다녀왔다. 좋다고 소문난 곳에 우리만 다녀오는 것이 한 켠으로 미안하여,

위험할지 모르니 공룡이 대신 먼저 다녀온다며, 삐죽이는 아이를 달래었다. 그렇게 동행한 공룡 한 마리.

가는 곳마다 아들인 양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란 경이롭도록 아름답다.

자, 이제 한 번 해 보았으니 두 번째는 같이 가자!


난생처음 타 보는 커다란 배의 위층에서 광장을

누비듯 뛰어노는 녀석이 귀여워서 찰칵!(안 귀여울

때가 언제 있기는 하냐마는)

이랬던 녀석이 지금은 프랑스에 가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파티시에가 되는

길에 발을 디뎠다.

실은 응급구조 분야를 원했으나 원어민 수준의

불어실력을 구사하지 못하여 차선으로 한

선택이긴 하지만, 집에서 만들었다는 마들렌이며

레몬타르트, 치즈케이크 등의 사진을 보내오는 걸

보면 대견할 밖에.

불어라고는 아빠랑 하는 일상대화가 전부였던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중학교에, 것도 반년 앞서는 학사일정 때문에, 2학기에 들어가

프랑스어로 전 과목을 읽고 쓰며 말하며(말수는 매우 적은 편이라는 의견 다수) 적응한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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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편 이동의 취약점인 날씨도 부조해 주었던 두 번째 제주 나들이.

첫 방문 때엔 레몬트리라는 모텔에 방을 잡았으나 이번엔 좀 더 제주스런 정취가 있는 곳에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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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읍 수산리의 가정집. 여행객의 심정이어서인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진 덕에 마당에 나와 발견한 풍경은,

안개 자욱한 정취가, 메말라 죽은 시상도 다시 깨워줄 것만 같다.

정신 차리고 가자, 장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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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애월읍의 소길리에 살았던 이효리가 참여하는 것으로도 입소문을 탄 이유인지,

제주시 중산간에 위치한 조그마한 카페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이라고는 믿기 어렵도록 몰린 인파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역의 경찰들이 출동해 교통정리를 해주기도 하였다. 진귀한 풍경을 후다닥 지나 자리를 펼친다.

아, 이거였구나. 오늘 마켓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진짜 이유.

옆 자리에서 이효리가 지인들과 함께 행거에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20150822_103818.jpg 옆 자리는 함께 간 프랑스분의 캐리커쳐 부스, 그 옆에서 나는 리예뜨를 팔았다

긴 시간을 머물지는 않고 지인들과 함께 옷들을 정리하고 본 마켓이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당시에는 '자기 물건을 남한테 맡기고 그냥 가네?'라고 생각했지만,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존재만으로도

다른 셀러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생길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실물을 보기 위해 방문했을지 모르나 이내,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는 5월의 햇살을

맞으며 사람들은 제주도 중산간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의 정취에 녹아들어 갔다.

따스한 햇살과 살랑거리며 귓불을 간지럽히는 바람, 그에 제 몸에 붙은 이슬을 털어내며 내뿜는 풀내음,

그리고 제주 히피(라 부르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제주의 한량)들이 온몸을 둠칫거리며 연주하는 음악.

이 날의 날씨가 나를 꼬드겼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바람이,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의 웃음이. 냄새가.

10년 넘도록 제주도민으로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마켓도 다니지 않고 날씨가 좋다고 드라이브를 나가거나

하는 일도 드물다. 일 없이도 넘어가곤 했던 서귀포였지만, 지금은 누가 서귀포 간다고 하면

"아이고게~무사 가맨?"하고 묻게 되었다. 일상의 이동은 반경 7km를 넘지 않으며 만나는 사람들도 잘

바뀌지 않는다. 마트의 무빙워크 외엔 에스컬레이터를 보는 일도 드물었는데 지금은 집 앞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바뀌어 거의 매일 타게 된 정도다.

가끔 탑동광장으로 산책을 나가 방파제에 서서, 섬에 드나드는 비행기를 올려다보기도 하고

먼바다에 떠 있는 고깃배나 크루즈십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도 한다. 그나마도 바람이 잠잠한 날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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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은, 언제 어떤 계기로 인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제주에서 계속 살 거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모른다.

셋이 내려왔던 제주를, 혼자 남은 지금도 떠나지 않는 이유?

아직은 떠날 이유가 없어서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