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의가 끝나고 복도를 걸어나오며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회의가 길어질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격렬한 분위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화의 흐름이 달라지더니 결국 각자의 입장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논쟁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데 집중한 나머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결론도 없이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속에 쌓인 말들이 남아 있었는지 회의실을 나서는 발걸음들이 무거워 보였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창밖을 바라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무언가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고 햇살이 눈에 비쳐 따뜻한 빛을 드리웠습니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왜 의견이 엇갈릴 때 그것을 단순한 차이로 보지 않고 옳고 그름의 문제로 여기는 걸까?
사실 생각해보면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접할 때 그 차이를 인정하기보다 본능적으로 반박하려 하거나 내 입장이 맞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아마 오늘 회의에서도 무의식중에 그런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왜 다름을 불편하게 느낄까요.
나와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그것을 그저 하나의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요.
여기에 단순한 성격 차이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심리적인 이유도 있을 테고 사회적 환경이나 살아온 경험들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확증 편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맞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정보에는 쉽게 수긍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는 내용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오랫동안 특정한 방식이 옳다고 믿어왔다면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접했을 때 마음이 불편해지고 심지어 그것을 부정하려는 생각까지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선택과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또한 사회적 환경도 이런 경향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의견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도 주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한 문화나 집단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중요하게 여겨져 온 가치들이 있고 이에 반하는 의견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집단 속에서 다수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요.
회의에서도 그렇고, 조직 생활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나곤 합니다.
괜히 분위기를 흐린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관계에 영향을 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한 의견에 동조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생각을 돌아볼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걸어온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가치관을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쌓아온 경험들이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겠지요.
오랜 시간 한 가지 신념을 지켜온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의견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을까요?
어제의 회의를 떠올리면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각자의 입장만을 더욱 굳히고 끝이 났습니다.
서로가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무조건 동의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다면, 그리고 다른 시각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허탈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한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관계를 맺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차이를 틀림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여유를 가진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양한 관점을 접하며 사고의 폭을 넓힐 수도 있고 더 유연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나도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내 생각을 지키려는 마음이 크니까요.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다름을 인정하는 연습을 해 보려고 합니다.
내 생각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인지 혹시 나는 너무 한쪽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감정보다는 논리로, 내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는 자리에서도 더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요?
어제처럼 아쉬운 회의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창밖의 나무는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바람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누군가는 시원하다고 생각할 테고 누군가는 쓸쓸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