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멈추어 선 채로

by 참지않긔


계단을 올려다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계단 난간을 더듬어 본다.


아직도 차가운 감촉이다.


언제부턴가 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어쩌면 오르라는 말도 듣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냥 모두가 오르고 있으니까 나도 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엔 낮은 계단이었다.


걸음마를 배우던 아이가 두 손을 휘저으며 한 계단씩 기어오르듯이 나는 그저 한 발씩 올렸다.


올려다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걸었다.


이 계단만 오르면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계단은 계속 이어졌다.


하나를 오르면 또 하나, 그 계단을 오르면 다시 또 하나.


내려가 볼까 생각해보지만 이미 너무 많이 올라와 버렸다.


돌아가는 길이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엔 쉬웠다.


구구단을 외우는 일, 받아쓰기를 하는 일, 뛰지 않고 걸어다니는 일.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었다.


“잘했어, 이제 다 컸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서 다음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도 칭찬을 하지 않았다.


그냥 올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어른이 되고 돈을 벌고 살아간다.


"다음 계단만 오르면 쉬어도 될 거야."


하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계단은 더 많아지고 숨이 차오르는데 끝은 보이지 않는다.


문득 멈춰서서 올려다본다.


높은 곳에 누군가가 서 있다.


저곳까지 가면 이제 쉬어도 되겠지 생각하며 다시 발을 옮긴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그는 이미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든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그러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계단은 원래부터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만든 걸까?"


나는 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꼭대기가 있기는 한 걸까?


끝까지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멈춰 본다.


계단을 오르지 않고 가만히 선다.


바람이 분다.


아주 오랜만에 발 아래를 내려다본다.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나처럼 멈춰 선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나를 올려다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도 나처럼 계단의 끝을 찾고 있을까?





어쩌면 올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가끔은 멈춰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일.


계단을 오르기만 하다가 계단 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


그래 오늘은 한 계단만 올라보자.


아니면 그냥 여기 서 있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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