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는 꽃이 된다

by 참지않긔


사랑은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길을 가다 멈춰서서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부르는 일.
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정말로 보고 있는 걸까.


언젠가부터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사람들을 지나쳐간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붐비는 거리에서, 커피숍의 창가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스치고 때로는 짧은 인사를 나누지만,
정말로 ‘본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보는 것과 안다는 것은 같은 일일까.
아니면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일까.
그가 웃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알 수 없고,
그가 내미는 손이 따뜻하지만 그 온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서로를 바라보려 하는 걸까.





그리스 비극에서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지.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파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보았기에 그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진실이 내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일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리어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왕좌에 앉아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왕관이 바람에 날려간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묻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그는 사람을 그리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진실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마주해야 할 상처이기도 하며 견뎌내야 할 고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고 싶다면.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그가 말한 ‘지옥’이란, 단순한 관계의 어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존재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은 나 혼자 정할 수 없는 일이다.
타인의 시선은 거울처럼 나를 비추지만 그 거울 속 내가 진짜일까?


나는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짜 나’일까?
아니면 내가 믿고 싶은 모습일 뿐일까?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지만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피카소는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하나의 얼굴이 해체되고 여러 개의 시선이 한 인물 안에 겹쳐진다.
우리는 타인을 그렇게 본다.
한 번에 한쪽 면씩 조각난 모습으로 결코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바라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내가 아는 너와 네가 아는 너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바라봄’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말한다.
"나는 너를 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는 너를 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계속 바라보려는 것뿐.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사랑하자.





소년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그녀의 모습을 찍었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그녀의 뒷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을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김춘수는 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를 내 세계 안으로 초대하는 것.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존재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일이다.
그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순간에 있든,
그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덜 바라보는 쪽으로 살아가고 있다.
SNS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일상을 엿본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바라보는’ 일일까?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지만,
그가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는 모른 채.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완벽히 알 수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라보아야 한다.


그가 나의 시선 속에 머물 수 있도록.
내가 그의 시선 속에 존재할 수 있도록.
서로를 끝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그때, 우리는 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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