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이후, 페르시아 시대의 유대 사회

신구약중간사 2부

by 참지않긔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한 이후, 유대 사회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다시금 신앙과 삶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그 앞에는 크고 작은 도전과 과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해야 했으며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또한, 유대 땅은 여전히 강대국인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고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법과 행정 체제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이 시기는 단순히 "페르시아가 유대를 다스렸다" 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사회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이러한 변화들은 이후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거쳐 신약 시대까지 이어지는 유대인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말라기 이후 페르시아 시대의 유대 사회 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페르시아의 통치와 유대 총독령의 형성


먼저, 당시 유대 땅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바벨론을 정복한 이후, 바벨론 왕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포로들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정책 을 펼쳤습니다.

특히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 은 특별한 칙령을 내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이로 인해 제2성전 시대 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는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한 행정 구역(유다 총독령) 으로 편입되었고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에게 세금을 납부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의 유대 사회는 총독과 대제사장이 함께 통치하는 이중 통치 구조 를 따랐습니다.


총독 은 페르시아 왕이 직접 임명하는 관리로서, 행정과 세금 징수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은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로서, 성전에서의 제사와 내부 사법 문제 를 다루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체제는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인들에게 일정한 자치권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 를 갖습니다.

즉, 페르시아가 직접 간섭하기보다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관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것 입니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느헤미야 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왕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 이었지만 유대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직접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개혁 덕분에 유대 사회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신앙이 느슨해지고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2. 사회적 변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유대인들


페르시아 시대의 유대 사회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

이미 유대 땅에서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원주민, 이방인 등)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을 회복하려 했지만 이미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과의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혼인 문제 였습니다.

귀환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들과의 결혼을 반대 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 남성들이 경제적인 이유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방인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는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이 결국 유대인들의 신앙을 무너뜨릴 것 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며 혼인을 정리할 것을 강요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였지만 결국 이러한 개혁 덕분에 유대 사회는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 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3. 문화적 변화: 언어와 생활 방식의 변화


페르시아 제국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정책 을 펼쳤으며 이는 유대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관습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문화적 변화는 언어의 변화 였습니다.


페르시아 시대 이후,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 ‘아람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람어는 당시 중동 지역에서 널리 쓰이던 국제적인 언어였으며, 페르시아의 공식 행정 언어 중 하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율법을 읽을 때 아람어로 번역하여 설명해야 하는 상황 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후에 신약 시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사용했으며 이는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4. 종교적 변화: 성전과 회당(시나고그)의 공존


페르시아 시대의 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변화는 회당(시나고그) 문화의 등장 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동안 성전이 없는 유대인들은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율법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문화 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당(시나고그)’ 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후,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였지만 회당 문화도 계속 유지 되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신앙 생활이 성전 중심에서 ‘율법과 기도 중심’으로 변화하는 계기 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신약 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장소 역시 회당 이었습니다.





5. 페르시아 시대가 유대 사회에 남긴 것


페르시아 시대 동안 유대 사회는 여러 변화를 겪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유다 총독령으로 편입되었으며, 총독과 대제사장이 함께 통치하는 체제가 유지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귀환자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였고, 혼인 문제와 신앙 순수성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문화적으로 아람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행정과 생활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성전 중심의 신앙과 함께 회당(시나고그) 문화가 자리 잡으며, 신앙의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이후 신약 시대를 여는 준비 과정 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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