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12지파의 이야기

신구약중간사 3부

by 참지않긔




옛날 옛적, 중동 한복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민족이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지도로 치면 지중해와 사막이 펼쳐지는 그 오묘한 지역에 자리 잡았죠.


이들은 여호와(신) 한 분만 믿는다는 꽤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갔는데 사실 그 지역은 여러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중심가였기에—쉽게 말해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위치였다고나 할까요?—전쟁이며 정복이며 온갖 소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스라엘을 이루던 ‘열두 지파’부터입니다.


“지파”라는 말이 좀 낯선가요?


쉽게 말해 열두 개 큰 가문이나 일족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가족 모임 한 번 하면 수만 명이 모이는 아주아주 크게 번성한 일가였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 가족이 솔로몬 왕 이후로 두 갈래로 쪼개졌답니다.


그중에서도 인구가 많고 힘이 센 열 지파가 북쪽에 모여 ‘북이스라엘 왕국’을 차렸고 나머지 두 지파(거기에 제사장 일을 맡는 레위 지파도 있었죠)는 남쪽에 모여 ‘남유다 왕국’을 형성했습니다.





그럼 왜 갈라졌냐고요?


실제로 보면 권력 다툼도 있었고 종교적 중심지를 어디로 둘 것인가 하는 갈등도 있었고 그냥 ‘어른들 사는 세상’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왕국이 갈라지면서 북이스라엘 열 지파는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 안 쓰고 베텔이나 단에 제단을 세우겠다!”라고 선언해버렸죠.


“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종교 분위기가 복잡다단해졌습니다.


왕들도 자주 바뀌었고요.


이 불안정함이 결국 참사를 불러왔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 솔직히 출발부터 여러모로 불안불안했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722년 초강대국 아시리아가 등장해 본때를 보이죠.


“사르곤 2세”라는 이름의 무서운 왕이 쳐들어와서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해버렸습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대규모로 아시리아 땅 곳곳에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이쯤에서 “강제 이주”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짐작이 가시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거대한 제국이 ‘막 차 타고 여기저기로 뿌려버린다’라는 느낌이니까요.


이들이 흩어진 후에는 서로 연락도 잘 안 됐을 거고 완전히 낯선 땅에서 아시리아 문화에 동화되거나 그야말로 역사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끌려간 건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운이 좋았는지(?) 본토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남아 있던 다른 민족들과 뒤섞여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것이 훗날 우리가 잘 아는 “사마리아인”의 뿌리가 됩니다.


아시리아 측이 워낙 통치를 수월하게 하려고 여러 민족을 마구 섞어놓았거든요.


‘우리가 사는 동네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외국인 이주민이 온다니…’


생각만 해도 얼마나 어색했을까요.


하지만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도 하고 종교 전통도 섞이고 새로운 문화가 꽃피웠던 겁니다.





다만 이 사마리아인들은 나중에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이방인이랑 섞인 잡종이야”라는 식으로 차별을 당하게 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역시 만만치 않은 곳이잖아요.


“너희 사마리아인은 정통 이스라엘이 아니야!”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둘 사이의 갈등이 점점 깊어졌답니다.





반면 남쪽에는 ‘남유다 왕국’이 자리 잡았는데 여기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성전 제사를 맡았던 레위 지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뿌리 깊은 다윗 왕조의 전통을 물려받았다고 자부심이 대단했죠.


하지만 이들도 무적이었던 건 아닙니다.


그 뒤로 고개를 빼꼼 내민 초강대국은 바로 바벨론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라는 왕이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더니 성전까지 싸그리 파괴해버리는 큰 사고를 칩니다.





이쯤 되면 ‘북이든 남이든, 이스라엘 사람들 참 고생이 많네…’ 싶죠.


여기에 더해 남유다 사람들 상당수가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를 ‘바벨론 포로기’라고 부르는데 낯선 땅에서 살면서도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외치며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종교인들이나 예언자들의 말씀을 귀담아듣기도 했고요.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노력한 게 꽤 대단하죠.





그런데 세상은 늘 바뀝니다.


바벨론을 이긴 또 다른 제국 바로 ‘페르시아’가 등장했고 그 유명한 “고레스 2세(키루스 대왕)”가 “너희, 돌아가서 성전 다시 짓고 예루살렘 재건해도 좋다”고 칙령을 내렸어요.


이 말에 눈물을 흘리며 고향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소위 ‘바벨론 포로 귀환 공동체’인데 스룹바벨이 앞장서고 에스라·느헤미야 등 여러 지도자가 뒤따라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다만, 이미 고향은 폐허가 되었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처절한 생존 전쟁을 치르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제2성전을 지어 올리고 스스로를 “우리는 예전처럼 하나님의 백성이야!”라고 인식하며 사회를 재건해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레위 지파(제사장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원래 성전 제사하고 율법 교육하는 건 우리의 전문 분야’라는 나름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거든요.


그들은 예루살렘에 정착하며 예배와 교육, 행정 업무까지 맡아 종교적 권위를 유지해나갔습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북이스라엘 열 지파는 마침내 완전히 증발해버린 걸까?’ 그게 또 그렇지도 않다고 해요.


대부분이 아시리아 땅으로 끌려갔지만 일부는 남유다로 피난을 가서 그쪽에 스며들어버렸고 또 일부는 본토에 남아 새로 이주해 온 이방인들과 섞여 “사마리아인”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되었다고 했잖아요.





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토라)을 나름대로 간직하면서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리는 독특한 신앙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는 유대인들과 크게 충돌했습니다.


“너희가 진짜냐 우리가 진짜냐” 하는 자존심 싸움이랄까.


심지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 총독 삼발랏이 훼방을 놓은 이야기도 성경에 있죠.


그러다 요한 힐카누스 시대엔 사마리아에 있던 그리심 산 성전이 파괴되기도 합니다.


이미 갈등이 깊었던 차에 성전까지 파괴했으니 둘 사이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상상해봅시다.


이 악감정은 신약 시대까지 이어져서 예수님 시절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넌 우리 편이 아니야!” 하며 철벽을 치고 지냈다고 해요.





여기서 “갈릴리”라는 지역도 무대에 등장합니다.


“갈릴리” 하면 왠지 예수님, 제자들,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장면 같은 게 떠오를 수 있는데 사실 역사적으로 이 지역도 북이스라엘에 속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와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아시리아가 정복 후 여러 민족을 섞었지만 갈릴리 쪽에는 상대적으로 저항이 적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주민, 그리고 나중에 남유다에서 올라온 사람들까지 뒤섞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 거죠.





페르시아나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갈릴리에도 유대인들이 조금씩 이주해왔습니다.


하스몬 왕조 시절에는 갈릴리가 아예 유대 왕국의 영역 안으로 편입되어 율법이나 전통을 꽤 열심히 지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명절이나 절기 때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러 가기도 했고요.


그러니 갈릴리가 “이방 문화의 소굴”처럼 보였다기보다는 “다른 문화가 섞이긴 했어도 유대 전통이 어느 정도는 유지된 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가 되면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주로 활동하시고 제자들 다수가 갈릴리 출신이었죠.


다만 예루살렘에 살던 ‘정통파’ 유대인 입장에선 갈릴리 사람들 말투가 어색하고(마태복음에 ‘어, 너 말투가 갈릴리네?’ 이런 식으로 놀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학문적 수준도 낮다고 무시당했어요.


세상 어딜 가나 ‘수도 vs 지방’ 구도가 있나 봅니다.


그럼에도 갈릴리는 나름 유대교 뿌리가 깊게 박혀 있었고 예루살렘 성전도 인정하고 전통 절기에도 참여했으니까요.





결국, 바벨론 포로 이전에 존재했던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강대국들의 잇따른 침략과 지배 속에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열 지파는 대부분 아시리아의 강제 이주 정책 속에 사라졌지만 일부는 유다 지파에 합류했고 또 일부는 사마리아 땅에 남아 새로운 공동체로 재탄생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우리가야말로 모세오경 정통 계승자”라고 자부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혼합 민족”이라며 멸시받았죠.


갈등이 커질 대로 커져서 신약 시대에는 서로 말도 안 섞으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반면 갈릴리는 점차 유대인들이 정착하며 율법 전통을 비교적 잘 지켜나갔고 예수 시대에는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 중심 유대인과는 또 다른 색채의 신앙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이렇듯 북쪽 지파가 전부 ‘증발’해버린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전개된 역사가 달랐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사마리아인 소수 집단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죠.


갈릴리 역시 여러 종교와 민족이 뒤섞여 살지만 예수님의 흔적과 유대교의 역사가 짙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최후는 어떠했나?’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지파는 역사 속으로 스며들었고 또 다른 지파는 남유다에 병합되거나 사마리아인으로 변신했으며 갈릴리 쪽은 유대교 전통을 간직한 채 예수 운동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한때 한 가족이었던 열두 지파가 정치·종교·문화적 배경 속에서 얼마나 다른 길을 걸었는지가 드러나죠.





“아유, 복잡하네!” 하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건 바로 그 복잡함 때문이랍니다.


강대국들이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신앙과 정체성을 지키려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까요.


종교적 배경 없이 읽어도 인간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얼마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왔는지 흥미롭지 않나요?





이 이야기는 비단 교회를 다니는 분들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어쩌다 생긴 갈등과 분열이 어떻게 이어지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보편적인 질문에 대한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흩어짐과 재편성의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도 꽤나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자, 이렇게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들으니 어떠셨나요?


“아직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사마리아인과 갈릴리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달랐는지, 또 유대인들과 왜 그렇게 아옹다옹했는지 대충 감이 오실 겁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어도 결국 뿌리는 같은 이스라엘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걸어온 길이 길고 복잡할수록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더욱 풍성하고 매력적인 법이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마리아인들의 남은 후손을 만나거나 갈릴리 호숫가에 가서 고즈넉이 옛 이야기를 떠올리며 “아, 이 지역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역사는 현재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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