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시대 초기, 유대 땅에서 벌어진 정치적 변화

신구약중간사 4부

by 참지않긔


기원전 330년경, 유대 땅에는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수백 년 동안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이곳에, 동쪽 끝 마케도니아에서 온 한 젊은 정복자가 새로운 질서를 세운 것이다.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는 엄청난 속도로 동방을 휩쓸며 페르시아를 무너뜨렸고, 유대 지역도 자연스레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정복은 단순한 정복이 아니었다. 그가 가져온 것은 그리스 문화와 정치 체계,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통치였다.


그렇다면, 페르시아의 통치가 끝나고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대 땅에는 정확히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었을까?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고, 새로운 지배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다스렸을까?

오늘은 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 보려 한다.





1. 폴리스(Polis) 체계, 유대 땅에는 어떻게 적용되었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정복한 지역마다 그리스식 도시, 즉 폴리스(Polis) 를 세웠다. 폴리스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헬레니즘 제국에서 폴리스는 행정의 중심지이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마치 작은 그리스 국가처럼, 폴리스는 자체적인 통치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대 땅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폴리스를 세우는 것은 정복 이후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었지만, 유대 지역에서는 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1) 유대인들은 강한 종교적·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폴리스가 세워지려면, 도시 안에 그리스 신전 이 세워져야 했고, 시민들은 다신교적인 제의를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유일신 신앙(하나님)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 였다.


2) 기존의 통치 방식이 이미 확고했다.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종교 자치 체제 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왕 없이도 공동체를 운영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새로운 폴리스를 세우는 것은 유대인들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일이었다.


3) 헬레니즘 지도자들도 유대인들을 억지로 변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강한 결속력을 가진 민족이었고, 괜히 건드렸다가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유대 지역에 대해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 하는 방향을 택했다.


결국, 헬레니즘 시대의 초기 유대 땅에서는 그리스식 폴리스 체계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대신, 기존의 정치 체계가 유지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이 선택되었다.





2. 대제사장을 통한 간접 통치


페르시아 시대부터 유대 땅은 대제사장 이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후계자들도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그들이 대제사장을 임명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대제사장은 종교적 지도자 였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행정적·사법적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왕조는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대제사장을 통해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간접 통치 방식 을 선택했다.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의 통치를 따르는 한, 비교적 높은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즉, 헬레니즘 통치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니들끼리 알아서 다스려라. 단, 우리한테 세금만 잘 내면 된다." 라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구조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이 단순한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넘어, 정치적 권력을 지닌 자리 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제사장직을 차지하는 것이 곧 유대 사회를 다스릴 수 있는 힘 을 의미하게 되었다.





3. 헬레니즘식 행정 관직의 도입


유대인들은 자치를 허락받았지만, 헬레니즘 제국은 여전히 이곳을 관리할 필요 가 있었다. 이를 위해 헬레니즘식 행정 관직이 일부 도입되었다.


이때 등장한 대표적인 행정 관직이 바로 히파르코스(Hyparchos, 지방 행정관)와 오이코노모스(Oikonomos, 재정 관리관) 이다.



1) 그럼 이 행정 관직들은 누가 맡았을까?


초창기에는 대부분 헬라인 출신 관리들 이 담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헬레니즘 문화에 적응한 유대인들 이 이러한 행정 관직을 맡기 시작했다.

특히, 상류층과 친헬레니즘적인 유대인들 은 적극적으로 행정 관직을 수행하며 헬레니즘 체제에 적응했다.


이것은 유대 사회 내에서도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는 세력과 전통을 고수하는 세력 간의 갈등을 점차 심화시키는 계기 가 되었다.





4. 세금 징수 체계의 변화


유대 지역의 통치 방식이 바뀌었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세금 이었다.

페르시아 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제국에 세금을 바치는 것 이 의무였고, 헬레니즘 시대에도 이 원칙은 유지되었다.


왕조는 유대 지역의 자치를 인정하면서도 세금은 철저히 징수 했다.

이를 위해 세금 징수 관료(텔로나이, Telonai) 를 임명하였으며, 유대인 유력자들이 이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았다.

유대인들은 성전세(종교적 헌금)도 내야 했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점점 커졌다.


왕조는 세금을 거둬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 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자치를 유지하는 방향을 선호했다.





정리하자면



1) 폴리스 체계는 유대 땅에서 정착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의 강한 종교적 전통과 헬레니즘 문화와의 충돌로 인해 폴리스 도입이 제한적이었다.


2) 대제사장을 통한 간접 통치가 이루어졌다.


대제사장이 종교뿐만 아니라 행정적·사법적 권한까지 가지게 되면서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3) 헬레니즘식 행정 관직이 일부 도입되었다.


초창기에는 헬라인들이 담당했으나, 점차 헬레니즘에 적응한 유대인들도 행정 관직을 맡기 시작했다.


4) 세금 징수 체계는 더욱 강화되었다.


왕조는 세금만 제대로 걷을 수 있다면 유대 지역의 자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들은 후에 유대 사회 내부의 분열을 초래했고, 결국 마카비 혁명과 같은 대규모 반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의 시작은 곧 유대 사회의 큰 격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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