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문화가 유대 사회에 불러온 거대한 파도

신구약중간사 5부

by 참지않긔

기원전 330년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유대 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아니, 바람이 아니라 거대한 파도였다.

단순히 새로운 정복자가 나타났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가 가져온 헬레니즘 문화는 유대인들의 삶의 방식, 사고방식, 심지어 신앙의 정체성까지도 뒤흔드는 강력한 흐름 이었다.


이전까지 유대 사회는 전통을 중심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는 신앙적 정체성을 더욱 굳게 다졌고 율법을 지키며 자신들만의 문화적 경계를 철저히 구분해 왔다.

하지만 헬레니즘은 그들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서며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고 그리스식 교육이 도입되며 예루살렘 한복판에 짐나지움(체육관)이 세워지는 순간부터 유대 사회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1. 헬레니즘 문화가 유대 사회에 스며든 과정


헬레니즘이란 단순한 문화적 유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사고방식 이자 삶의 방식 이었다.

페르시아 시대와는 달리 헬레니즘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그들의 언어, 철학, 생활방식을 익히고 따를 필요가 있었다.



1) 그리스어(헬라어)의 확산: 새로운 세대의 언어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지역에서는 공용어로 헬라어(그리스어) 가 사용되었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었다.

헬라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행정, 학문, 철학, 정치적 논쟁에서 완전히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 이었다.


처음에는 상류층 유대인들이 헬라어를 배웠다.
로마 시대의 엘리트들이 라틴어를 배우듯 그 시대에 성공하려면 헬라어를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헬라어가 너무 널리 퍼져 유대인들조차 히브리어보다 헬라어를 더 많이 쓰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기원전 3세기경, 유대 사회 내부에서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칠십인경(Septuagint)이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 상황을 보고 경악했다.

"우리 후손들이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헬라어로 성경을 읽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유대교는 언어와 함께하는 신앙이었기에 히브리어를 버리는 것은 곧 신앙적 타락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2) 그리스식 교육과 철학: 유대 젊은이들의 새로운 열망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철학이 곧 삶의 중심이었다.

논리, 수사학, 웅변술, 정치학, 윤리학 은 지식인이라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학문이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신과 인간에 대해 질문했고 "진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진리는 율법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유대 사회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유대교의 전통보다 헬라 교육에서 배운 자유로운 사고방식에 더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율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왜 진리일까?", "세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철학을 배우며 더욱 신앙을 깊이 이해하려 했지만 어떤 이들은 신앙을 벗어나 헬레니즘적 사고에 빠져들기도 했다.



3) 체육관(짐나지움)과 신체적 이상: 할례 논란


헬레니즘 세계에서 육체는 곧 아름다움 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체육관(짐나지움, Gymnasium)에서 운동하며 강한 신체를 단련했고 올림픽 같은 대회에서 인간의 신체적 완벽함을 찬양했다.

하지만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심각한 문제 가 발생했다.
그리스 체육관에서는 모든 남성들이 나체로 운동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유대인들과 비유대인의 차이가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유대인 남성들은 할례(포경수술)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몸은 이방인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리스인들은 할례를 야만적인 풍습이라 조롱했고 젊은 유대인들 중에는 "헬라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할례를 감춰야 한다" 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할례 흔적을 감추기 위해 재수술(할례 흔적을 복원하는 수술) 을 받기까지 했다.

이는 유대 사회에서 엄청난 논란 을 일으켰고 할례를 고수하는 전통주의자들과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려는 세력 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2. 유대 사회 내부의 갈등 : 전통 vs 변화


헬레니즘이 확산되면서, 유대 사회는 두 개의 세력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1)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려는 유대인들 (친헬레니즘파)


이들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고 헬레니즘 세계에서 성공하는 것이 유대 사회를 발전시키는 길 이라고 보았다.

헬라어를 배우고 철학을 공부하며 심지어 할례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들은 정치·경제적으로 유대 사회의 상류층에 속했고 왕조와 협력하며 헬레니즘을 유대 문화 속으로 스며들게 하려 했다.



2) 전통을 고수하려는 유대인들 (율법주의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유대인의 정체성이며 헬레니즘 문화는 신앙을 타락시키는 것 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헬라 문화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

율법 준수를 더욱 강조하며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인 유대인들을 비판 했다.


이 두 세력의 충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격화되었고 결국 기원전 2세기경에는 유대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대규모 갈등으로 폭발하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가 유대 사회에 던진 질문


헬레니즘 문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 사회에 본질적인 질문 을 던졌다.


"우리는 누구인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앙을 유지하는 것과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지 헬레니즘 시대의 고민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인간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 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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