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제단, 그리고 내 이름은 예이손

신구약중간사 6부

by 참지않긔


예루살렘에는 늘 바람이 분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먼지 섞인 바람, 성전 언덕에 부딪혀 도심을 훑고 내려오는 바람, 그리고 가끔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모든 이의 속을 건드리고 마는 그런 바람 말이다.

기원전 4세기, 그 도시에 불어온 바람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거리의 말투가 바뀌고 건물의 형태가 바뀌고 사람들의 옷자락 끝이 낯선 리듬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 바람의 탓이었다.

헬레니즘, 이름부터 뭔가 혀끝에서 돌돌 말리는 이 단어는 처음엔 단지 ‘멋’이었고 ‘신선함’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그리스어가 들려오고 모퉁이에는 근육질 청년들이 뛰노는 체육관이 세워졌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헬라어 회화’가 히브리어 성경 읽기보다 인기였다.



그리고 그 인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상을 종횡무진 가르며 퍼뜨린 것은 단지 영토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정복은 칼날보다 언어, 군사보다 사상, 통치보다 취향으로 더 깊이 스며들었다.

헬레니즘은 말하자면 당시 기준으로는 ‘핫한 트렌드’였고 유대 젊은이들은 그 흐름에 편승하고 싶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문제는 그 흐름의 끝에 있는 것이 단지 그리스식 샌들이 아니라 정체성의 경계선이었다는 점이다.



체육관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이름만 들으면 건강한 구릿빛 피부와 땀방울, 혹은 요가매트가 떠오를 수도 있지만 그리스의 체육관은 조금 다르다.

일단 나체였다.

진심이다.

전신의 근육을 신들께 바치는 미적 행위쯤으로 여겨졌고 철학과 운동이 공존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고대 헬라식 '헬스장'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유대 남성의 몸에는 신과의 언약을 나타내는 표식, 즉 할례의 흔적이 있었다.

그 자체로는 신앙의 자랑이었지만 체육관 안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어, 얘 좀 다르네?”라는 말 한마디가 공동체의 중심을 흔들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걸 감추기 위해 실제로 수술까지 감행했다.

지금으로 치면 종교적 문신을 지우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정체성을 외과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유대인이지만 당신들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아요’라는 간절한 호소가 수술 도구로 표현되던 시대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름도 바꿨다.

여호수아는 예이손이 되었고, 엘리에셀은 알렉산드로스가 되었다.

친구들은 “멋지다, 예이손! 헬라 남자 다 됐네!”라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된장국(은 당시 없었지만)을 뿜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철학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리자 상황은 더욱 미묘해졌다.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생각하는 인간’이 칭송받았다.

철학자들이 시장 한복판에서 배꼽을 긁으며 인생의 의미를 읊었고 “너 자신을 알라”는 문장이 도심의 벽에 적혀 있었다.

유대 청년들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은 율법이 금했던 종류의 내면 파고들기였다.



유대교는 오랫동안 외부의 철학보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데 집중해왔다.

왜냐고 묻기보다는 '그렇다 하셨으니 그렇다'는 전통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이 “실재는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이란 인간의 목적이다”라고 선언하자 일부 유대 청년들은 밤마다 양피지에 몰래 철학을 필사했다.

“율법은 좋은데... 철학은 뭔가 간지나잖아?”



그러다 마침내, 진짜 선이 넘는 사건이 터진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이름부터 어딘가 불길했던 이 사람은 어느 날 기막힌 결단을 내린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의 제단을 세우고 거기서 돼지를 제물로 바친다.

돼지다.

율법에 따라 유대인들이 먹지도 못하는 그 돼지다.

이건 단순한 오해도 아니고 문화차이도 아니었다.

“아, 그건 몰랐네요”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신성모독의 끝판왕이었다.



이쯤 되자 유대인들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말이 아닌 칼로 답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유다 마카비가 있었다.

이름부터 뭔가 전투력이 느껴지는 그는 형제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이는 훗날 우리가 ‘마카비 혁명’이라 부르는 대사건으로 발전한다.

이 혁명은 단지 성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전면적인 저항이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 조상들의 삶의 방식, 율법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기억—all in.



이제 우리는 이 모든 일을 먼 고대의 이야기로만 들을 수 없다.

시대는 다르지만 본질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 앞에는 수많은 헬레니즘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SNS 피드, 광고 문구, 자기계발서 속 문장 하나가 우리의 신앙을 톡톡 두드리고는 묻는다.

“진짜 이게 너야? 네 정체성은 이게 다야?”



그럴 때마다 우리는 고대 유대 청년들과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멋져 보이는 그리스어 회화를 따라야 할까 아니면 할례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며 살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체육관이 있고 철학서가 있고 제단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곳엔 돼지가 슬며시 들어오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지키며 살고 있는가.

정체성은 때로 불편하고 종종 고독하다.

하지만 유다 마카비의 혁명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건 그 고독을 감당할 때 비로소 믿음은 역사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끔은 간지나는 철학책보다 덜 멋지지만 훨씬 묵직한 답이 율법의 낡은 두루마리 안에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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