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이름 사이

신구약중간사 7부

by 참지않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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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좀 전에 올린 '예루살렘의 망치' 바로 전 이야기인데 제가 순서를 맞추지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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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0년, 예루살렘.

도시엔 낯선 단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로고스,” “아레테,” “카탈레게인.”

그리스어였다.

하나냐는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비밀스러운 주문처럼 느꼈다.

혀끝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그 단어들은 오래된 성전의 히브리어보다 훨씬 매끄럽고 세련되고, 솔직히 말해 멋져 보였다.

짐나지움이 들어선 뒤로 도시의 공기는 달라졌다.

돌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청년들의 고함 소리, 발바닥을 때리는 맨살의 마찰음, 체육 교사의 휘슬 소리.

예전엔 율법 학교에서 들리던 하브루타의 목소리가 이제는 아침부터 체육관의 철학 수업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하나냐는 성전 서기관의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모세오경을 암송하며 자랐고 안식일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전 예배에 참석했다.

하지만 요즘은 가끔 예배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 철학의 문장이 떠오르곤 했다.

“행복이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삶이다.”

그 말을 처음 한 건 예이손이었다.

본명은 여호수아.

하지만 요즘은 아무도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체육관에서는 다들 그를 ‘예이손’이라 불렀다.

그는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운동 능력도 뛰어났고 무엇보다 여자들이 그를 좋아했다.

그는 늘 짐나지움에서 당당하게 걷고 토가를 입고 철학 수업에서 논리를 가지고 대제사장의 권위까지도 논박했다.

“하나냐, 넌 아직도 아버지랑 히브리어로 기도해? 이젠 회당에서도 헬라어로 예배 보는 데가 생겼다고.”

예이손은 웃으며 말했다.

“이게 시대야, 시대.”

하나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뱉은 그 ‘시대’라는 단어엔 무언가 설득력 있는 리듬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엘리에셀이 그를 붙잡았다.

“너, 그 체육관 자꾸 가면 안 돼. 거기선 할례받은 몸이 조롱거리가 된다고.”

“형, 나 거기선… 그냥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을 뿐이야.”

“‘사람들처럼’ 사는 게 너희 정체성을 버리고 돼지 고기를 입에 넣는 거라면, 그건 그냥 살아지는 게 아니라 죽는 거야.”

하나냐는 그 말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며칠 후, 체육관에서 수업이 끝난 뒤, 예이손은 하나냐를 옆에 불렀다.

“너도 할례 흔적을 없애는 수술 받으려고 하지?”

그 말에 하나냐는 숨이 턱 막혔다.

그게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일이었나? 그건 단지 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하나님의 명령, 유대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난… 아직 생각 중이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여기선 그게 자유야. 구속이 아니라.”

예이손은 웃었지만, 하나냐는 그의 미소에서 묘한 쓸쓸함을 보았다.





체육관의 정문엔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름답고 선한 인간’. 그리스의 이상적 인간상.

그 문구 아래서 하나냐는 엘리에셀과 마주쳤다.

“너, 이제 거기까지 간 거야?”

“난… 그냥, 진리를 찾고 싶었어.”

“진리는 여기에 있다.”

엘리에셀은 낡은 두루마리를 꺼내 보여주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다.”

순간 하나냐는 두 이름 사이에 갇힌 자신을 느꼈다.

하나는 ‘하나냐’.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다른 하나는 ‘예이손’. 헬라식 삶의 상징.

그리고 그는 알 수 있었다.

이름을 바꾸는 순간, 삶도 함께 바뀌는 것이라는 걸.





며칠 후, 예루살렘 시내에 소문이 돌았다.

“안티오코스 왕이 제우스 신상을 성전에 세웠다더라.”

“돼지를 제물로 바쳤대!”

“이제 율법은 폐지된 거야. 안식일도 금지야!”

시장의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거리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예이손은 짐나지움에서 더는 웃지 않았다.

헬레니즘 세계에서조차 유대인의 피는 이방 신 앞에 서면 흔들렸다.

그날 밤, 하나냐는 다시 엘리에셀을 찾았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젠 나도 선택해야 할 것 같아.”

“늦지 않았어. 넌 여전히 하나냐니까.”





그리고 며칠 뒤, 누군가는 짐나지움 입구에 이런 글을 새겨놓았다.

“우리는 돼지에게 절하지 않는다.”

이름 없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날 예루살렘엔 다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먼지가 아니라 결심이 실린 바람이었다.





기원전 168년, 티쉬리월.

가을이 내린 예루살렘.

성전의 계단 위엔 낙엽 대신 경고문이 흩날리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모든 제단은 제우스에게 바쳐진다.”

“안식일 모임 금지.”

“율법을 외우는 자는 사형.”

성전 광장은 침묵했다.

하늘도 내려다보는 것을 망설이는 듯 흐리기만 했다.

하나냐는 그날, 무언가 깨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깨진 조각들 사이에 자기 자신도 끼어 있다는 것을.

그는 여전히 짐나지움에 다녔다.

그러나 그곳은 예전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땀냄새도, 기름냄새도 아닌, 체념의 냄새.

예이손은 더 이상 환하게 웃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 아래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성전 제단에 돼지를 올렸대.” 예이손이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게 정치야. 왕은 유대인들이 같은 언어로, 같은 신을 섬기며 뭉치는 걸 두려워했어. 그래서 다 무너뜨리는 거지.”

그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웃음은 없었다.

“지금 유일한 진리는 권력이야. 진짜 신이 누구든 간에.”

하나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밤마다 들리는 성전 쪽의 바람 소리는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그건 질문이 아니라, 심판처럼 느껴졌다.





엘리에셀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건 그가 아니라 그가 속했던 세상이었다.

율법 학교는 폐쇄되었고 라삐들은 체포당했다.

하나냐는 그의 흔적을 찾아 예전 회당을 돌아다녔지만 엘리에셀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나냐, 우리는 지금 시대와 거래하는 중이야. 잃지 않고 살아남는 길은 없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지, 그 선택만 남았어.”

그날 이후 하나냐는 밤마다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아직은 숨어 있는 라삐 한 명이 그에게 율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는 작은 촛불 아래서 몰래 히브리어를 다시 되새기기 시작했다.

헬라어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허 속에서 그는 기도했다.

“주여, 제가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제 이름의 뜻처럼, 당신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하소서.”





며칠 뒤, 예루살렘 외곽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모디인이라는 마을에서 한 제사장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제우스 제단 앞에서 돼지를 바치려는 관리와 유대인 협력자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의 이름은 마따디아.

그리고 그를 이은 아들이 바로… 유다였다.

유다 마카비.

마카비(Makkabi), 곧 ‘망치’라는 뜻.

이름부터가 전쟁을 예고했다.

“율법을 위해 칼을 들자!”

예루살렘 거리 곳곳에 손으로 쓴 전단이 붙기 시작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한 젊은이들이 도시 외곽 산지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성전을 되찾기 위해 신앙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냐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짐나지움을 떠나던 날, 하나냐는 예이손을 찾아갔다.

“넌 여전히 거기 있을 거야?”

예이손은 창문 너머로 그를 보았다.

그의 손에는 그리스 철학서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 표지는 닳고 너덜거렸다.

마치 시대의 허상을 오래 쥐고 있었던 손끝처럼.

“…넌 변했네.” 예이손이 중얼거렸다.

“아니,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이야.”

그는 돌아섰다.

짐나지움의 대리석 벽에 새겨진 글귀, ‘칼로카가티아’가 바람에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하나냐는 이제 안다.

‘아름다움’과 ‘선함’은 단지 조각된 문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희생으로 증명되는 것이었다.





그해 겨울, 산지에서는 횃불이 타올랐고 예루살렘 성벽 너머로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밤을 뒤흔들었다.

마카비 형제들이 주도한 반란은 거대한 불길로 번졌다.

하나냐는 엘리에셀과 다시 만났다.

둘 다 헐벗고, 굶주렸고,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다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단지 전쟁이 아니야.” 엘리에셀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누구로 남고 싶은지에 대한 고백이야.”

하나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하나냐. 나는 주의 은혜 아래 있다.

그리고 그는 진짜 전쟁터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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