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하는.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때 예전처럼 손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직업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도 가족은 잘 지내냐는 인사에도
나는 말끝을 흐리거나 잠깐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속한 자리가 어디인지
그 모든 질문이 실은 나에게 “당신은 지금,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있는 듯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는다.
예전엔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회사 다녀요.”
“아이 키우고 있어요.”
“요즘은 이거에 빠져 있어요.”
그런 말들로 어느 정도는 내가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었고
나 자신도 그것이 나의 전부인 양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 말들만으로는 내가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말들로부터 멀어진 지금이 진짜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많은 것이 정리될 줄 알았다.
선명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더 흐릿해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른스러움’이라는 건
더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일에 가까웠다.
자신감 대신 조심스러움이 생기고,
단정 대신 망설임이 늘어난다.
그런 변화가 처음엔 낯설고 살짝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낯섦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 오히려 익숙하다.
나는 사람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젊을 때도 그랬다.
북적이는 모임보다는 조용한 대화가 좋았고
어울림보다는 거리 두기가 편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나는 자주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혼자 있고 싶은 마음,
그 모순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게 나였다.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자연스럽다.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스스로와 보낸다.
커피를 내리고 창밖을 보며 생각하고
때때로 아주 오래된 기억을 꺼내 들여다본다.
그 기억들 속에는 말 못한 말들이 있고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살아 있다.
그것들은 때로 내 하루를 슬그머니 흔들어 놓지만
이제는 그런 흔들림이 반갑다.
나를 여전히 움직이게 하는 감정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다.
나이 든다는 건
몸이 불편해지는 것보다 마음이 느려지는 데서 더 실감난다.
어릴 땐 이유가 분명했다.
화가 나면 그 대상이 있었고,
기쁘면 그 이유가 또렷했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 이유 없이 우울하고,
기쁘면서도 허전하고,
화가 나는 것 같다가도 금세 사라진다.
감정이 더 풍성해졌다고도 복잡해졌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저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다르다.
예전엔 그런 내 상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왜 이렇게 쉽게 지치고
왜 이렇게 말없이 화가 나 있고,
왜 이렇게 감정이 흐트러지는지 몰라서
혼자서 스스로를 질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내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신호라는 걸.
다만 그 신호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지금은 이유를 찾기보다 감정을 그냥 지나가게 둔다.
설명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아마도 고요한 시간 덕분이었을 것이다.
예전엔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거리보다 그들과의 빈도에 더 집중했다.
얼마나 자주 연락하고 얼마나 자주 얼굴을 보고 얼마나 길게 통화했는가가
친밀함의 증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외로움에 대한 조급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까워져야 한다고 그렇게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건
내가 혼자가 될까 봐 혹은 내가 혼자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다르다.
더 많이 안다고 해서 더 깊이 아는 건 아니라는 걸
더 자주 만난다고 해서 더 가까운 건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 내게 남은 관계들은 몇 개 안 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온기가 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서로를 떠올리는 순간이 있고
말없이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공기가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어릴 땐 그런 관계가 지루해 보였다.
모험도 없고 큰 감동도 없고 드라마도 없어서.
하지만 살아보니 그 지루함이야말로
삶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파도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옆에 있어주는 사람,
그런 존재 하나만으로도 삶은 덜 외롭다.
요즘은 "괜찮다"는 말이 자주 입에서 맴돈다.
실제로 괜찮아서라기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마음이 더 크다.
힘들다고 말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말하는 법을 배운다.
그 말이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르니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 어른인가?
혹은, 나는 언제부터 어른이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아닌 걸까?
누군가에게는 어른인 것처럼 보여야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철든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 역할을 그럴듯하게 연기하고 있지만
실은 나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 망설이고
선택을 하고 나면 후회하고
살짝 삐지기도 하고
괜히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고.
그럴 때면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서 있는 나 자신을 떠올린다.
‘어른이’라는 말.
처음엔 장난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가장 정확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책임을 질 줄은 알지만
때로는 그 책임이 너무 무거워 도망치고 싶고
누군가를 돌보면서도 동시에 나도 돌봄받고 싶고
당당하려 애쓰면서도
어쩔 땐 작은 칭찬 한 마디에 마음이 흔들린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버틴다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말 그대로 ‘버티는’ 것이기에
힘든 건 당연하고
지치고, 흔들리고
가끔은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주저앉는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다.
그게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돌아보며
“그래도 잘 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인생이다.
지금 나는 무언가를 이루는 삶보다
내가 지켜온 것을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괜찮다고 믿어온 것들
나를 지탱해준 가치들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한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요즘 뭐가 제일 좋아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정말 그랬다.
요란하지 않은 하루,
큰 기쁨도 없지만 큰 상처도 없는 하루
그 하루를 무사히 통과한 날이면
나는 스스로에게 작은 박수를 쳐주고 싶어진다.
버텨준 나에게,
도망치지 않은 나에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간 나에게.
이제는 내가 나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굳이 증명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어른이로서
서툴고 불완전한 채로
여전히 배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도 나의 하루를 지나간다.
그게 삶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