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해자가 된 사람을 볼 때마다 쉽게 말한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지?"
"나 같으면 절대 안 그랬을 텐데."
그 말들은 마치 무심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말들은 칼날처럼 예리해서 피해자의 마음을 깊숙이 베어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상처와 침묵뿐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비난으로 변한다.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멍청하게 당하냐"는 비아냥이 따라붙고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왜 그런 옷을 입었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학교폭력 피해자에게는 "왜 맞고만 있었냐"는 질책이 가해진다.
그렇게 묻는다.
"왜 그렇게 행동했어?"
그러나 그 말의 의미는 다르다.
"그러니까 너도 잘못이 있는 거 아냐?"
그러나 정작 피해자가 된 사람은 생각한다.
그날 아침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늘 입던 옷을 입고 평소처럼 지하철을 타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하며 출근길을 걸었다.
그러다 전화를 받았고 익숙한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에 안심했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뒤엔 이미 사기의 덫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집에서 나설 때까지만 해도 이 길이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제도 그제도 걸었던 길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를 조용히 지나가던 길이었고 별다른 사건이 없었던 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불쑥 나타난 남자가 뒤에서 팔을 잡아챘고 몸이 휘청이며 넘어졌고 공포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너무나 직접적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었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을 때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그저 조용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지만 그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맞고 밀치고 욕을 퍼붓던 아이들 사이에서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너도 좀 맞서지 그랬어."
그는 반격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항하는 순간 폭력은 더 심해질 것이 뻔했으므로.
그가 할 수 있는 건 하루를 견디고 또 하루를 버티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않는다.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그러니까 네가 더 강했어야지."
우리는 피해자를 비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피해자를 비난하는가?
가장 먼저, '공정한 세상 가설(Just World Hypothesis)'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이 예측 가능하고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믿고 싶어 한다.
착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으며 신중한 사람은 안전하고 부주의한 사람은 피해를 입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피해자가 등장하면 이 믿음이 흔들린다.
그렇다면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피해자에게서 실수를 찾아낸다.
"저 사람에게도 뭔가 잘못이 있었을 거야."
그렇게 믿어야만 나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자기 방어 기제(Self-Defense Mechanism)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어 한다.
피해자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인정하면 불안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해 애쓴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나는 더 똑똑하게 행동할 거다."
"나는 저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다."
이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피해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문제를 찾아내며 때로는 비난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우월감(Social Superiority) 도 작용한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나는 저런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아."
"나는 더 신중하게 행동할 줄 알아."
"나는 저 사람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일종의 만족감을 준다.
피해자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질수록 우리는 더 안전하고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완벽한 피해자'의 환상(The Myth of the Perfect Victim) 때문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순결하고 조심스럽고 도덕적으로 완벽해야만 동정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피해자는 없다.
사기를 당한 사람이 완벽하게 신중했던 것이 아니었고 성범죄 피해자가 항상 조심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을 경우 그 실수를 확대해서 "자업자득"이라고 단정 짓는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회는 오히려 피해자를 검열하고 재단한다.
마지막으로, 집단 심리(Group Psychology)와 익명성(Anonymity)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피해자 비난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는 책임감이 줄어들고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기가 쉬워진다.
몇몇 사람이 시작한 비난이 집단적으로 퍼져 나가며 어느 순간 그 비난은 '상식'처럼 굳어진다.
우리는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보이스피싱, 사기, 폭력, 범죄—어떤 상황에서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 현실을 외면한다.
피해자를 비난하며 자신은 다를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피해자들은 더욱 침묵할 수밖에 없다.
피해를 입고도 "내가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 말하지 못하는 사회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줄 뿐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피해를 예방할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피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진 ‘나는 절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불공평하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 그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피해자를 탓하는 일만큼은 멈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