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자주 멈춘다.
그건 누구에게도 선언하지 않은 조용한 항거 같은 것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대형 마트의 계산대 앞에서 아주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에 가만히 선다.
누군가는 그것이 망설임이라고 어떤 이는 무기력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오직 나만을 위한 멈춤이다.
세상은 나에게 달리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더 멀리, 더 많이.
하지만 내 몸은, 내 마음은 점점 작아진다.
어깨는 좁아지고 마음은 쉽게 피곤해진다.
속도를 올릴수록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익명의 이름이 되고 기능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유 없이 길 위에서 멈췄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리고 신호는 초록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 시작이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는 남았다. 처음으로.
멈춰서 보았다.
아스팔트 위에 누운 낙엽 하나.
그 낙엽 위를 피해 걷는 아이.
바람이 불면서 낙엽은 살짝 들썩였고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서 울컥했다.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 가장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멈춤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는다.
멈춘다는 건 종종 오해를 낳는다.
무기력, 패배, 혹은 회피.
하지만 나의 멈춤은 그 어떤 도망도 아니다.
그것은 다시 살아내기 위한 준비다.
전선 위의 참새처럼 잠시 몸을 말아 올리는 시간이다.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반드시 내쉬어야 하듯 나는 숨을 내쉬기 위해 멈춘다.
내 안에서 조용히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가끔은 멈추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멈춘다.
어느 오후, 붐비는 카페에서 문득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커피를 식히고 있을 때.
누군가의 대화가 파편처럼 귀에 들어오고 눈앞에서는 연기가 흐른다.
그 순간엔 나라는 존재가 투명해지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그냥 거기 있다.
그런데 그게 좋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삶이 허락하는 가장 조용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나도 늘 움직였다.
실수가 두려워 계속해서 스케줄을 채웠고 의미 없음을 의미로 포장해 바쁘게 살아냈다.
매번 '이 정도면 괜찮은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안다고 믿었던 나는 그저 외면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뿐이다.
멈춘 뒤에야 나는 나를 보았다.
거기엔 서툴고 무른 마음이 있었고 예전보다 작아졌지만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손을 대면 사라질까 봐 말조차 삼키고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
사람들은 멈춘 나를 보고 묻는다.
왜 거기 있어요? 어디 아프세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웃는다.
아무 일도 없다고.
그냥 잠깐 서 있는 거라고.
그것이 진심이기도 하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지만 그 아무 일도 없음 속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나를 회복하고, 숨결이 돌아오고, 오래전 흘려보냈던 감정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멈춘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다짐이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서둘러 살아내지 않아도 된다고 어떤 계획 없이 살아지는 삶도 존재할 수 있다고.
매 순간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단정짓지 않으며 살아가는 용기.
나는 그런 용기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멈추는 법을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
어느 저녁이었다.
해가 지고, 기온이 내려가고 거리는 분주했다.
나는 버스를 놓쳤고 다음 차까지 시간이 남았다.
그때 벤치에 앉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리고 멀리서 걸어오는 아주 작은 아이의 걸음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자주 멈추었다.
작은 돌멩이를 보고 가로등 아래를 지켜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굽히더니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었다.
그 순간 나는 웃고 말았다.
그 아이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멈추는 일의 소중함을.
이따금은 멈춘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오래전 떠나간 이들, 더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나.
멈춘다는 건 기다림과도 닮아 있다.
다시 움직이기 위한 기다림.
혹은 다시 만나기 위한 기다림.
나는 지금도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살아간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나의 존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멈춘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를 지키는 가장 조용한 방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