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 내가 네게 말해 줄 때까지 거기 머물러 있어라. 헤롯 왕이 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한다.”
그래서 요셉은 밤에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헤롯은 동방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매우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과 그 주변 지역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동방 박사들에게서 알게 된 아기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라헬이 자기 자식을 잃고 우는 소리였다.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그래서 요셉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 지역에서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셔서, 그는 갈릴리 지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습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쉬운 성경으로 읽는 마태복음 2장 13절 ~ 23절
어느 날, 끝났다고 믿었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 아주 작고 조용한 시작이 있었다.
그 시작은 대개 질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이 길이 맞는 걸까”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이 하루의 모든 침묵을 뒤덮었다.
돌이켜 보면 길은 언제나 예상 밖의 방향으로 향했다.
어떤 날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한 채 단지 걷는다는 행위 자체로 오늘을 살아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길을 걷고 있었음을 나중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사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조금씩 뒤늦게 깨닫는 일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밤은 항상 고요했다.
무언가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졌고 그 울림은 설명 없이 “지금이 그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은 누군가에겐 상상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삶 그 자체였다.
그 밤은 주저할 새도 없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이해보다 행동이 먼저였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 알았다.
어떤 결정은 신념에서가 아니라 막막함 속에서 밀려드는 조용한 손길 하나에 이끌려 일어난다는 것을.
새로운 땅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곳에 머물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내 안의 언어를 잃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낯선 곳이야말로 어떤 상처로부터 나를 숨겨주었던 오래 준비되어 있던 피난처였음을.
슬픔은 설명으로는 충분히 담기지 않는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언젠가부터 마음 깊숙한 곳에 물이 고이듯 자리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어느 시절엔 그 슬픔이 말을 잃고 눈물로만 남았다.
울음은 조용했고 고개를 숙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 그저 일상인 척 버텼던 날들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그 무게를 알지 못했고 누군가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지만 어떤 존재는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물러 주었다.
그 곁에 있던 ‘그분’이 울음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슬픔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아주 나중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말보다 기억이 위로가 되는 날이 있다.
그리고 함께 우는 마음이 가장 선명한 대답이 되는 순간이 있다.
되돌아가는 길도 순탄하진 않았다.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간 또다시 예상치 못한 두려움이 앞을 막았다.
그래서 잠시 멈췄고 그 멈춤 속에서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생각보다 삶은 선택과 우연 두려움과 용기의 뒤엉킴 속에서 조금씩 조율되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전체의 방향을 부드럽게 밀어주듯이.
그 길의 끝에는 예루살렘도 베들레헴도 아닌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고 여겨지던 작고 외진 마을 하나가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고 말하던 땅이었고 내게도 그러한 순간들이 있었다.
보잘것없고 이름조차 붙지 않은 듯한 시간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조용하고 깊은 성장이 이루어졌던 시간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골목길에서 내 삶의 방향은 바뀌고 있었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자리에서 나는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삶이라는 건 누군가 먼저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더듬더듬 걷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길은 늘 낯설지만 어쩌면 단 한 번도 진짜 낯선 적은 없었다.
한밤중에 떠나야 했던 그날에도 상실의 눈물로 방 안이 젖었던 날에도 돌아가려다 다시 돌아서야 했던 순간에도 누군가의 시선이 누군가의 흔적이 그리고 누군가의 손길이 이미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빛나는 목적지로 이끌기보다는 길 위에서 방향을 조용히 조정해주는 묵묵한 배려 같은 인도.
마침내 도착해서야 모든 우회가 결국 나를 위한 경로였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리고 지금 이 길의 중심이 어디인지 모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계절이 자꾸 이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지나온 길 위에는 보호가 있었고 울음을 기억하는 자리가 있었고 보잘것없어 보였으나 가장 깊은 준비가 진행되던 은밀한 지점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이유를 묻는 대신 걸음을 내디딘다.
주님,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목적지도 흐릿하고 오늘의 발걸음조차 불안정한 이 여정 속에서 때로는 멈춰서 묻고 때로는 돌아서며 헤맸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낯설었던 그 자리마다 울음보다 먼저 놓여 있던 손길이 있었고 불확실한 갈림길마다
나를 향해 조용히 빛을 틔우던 당신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모든 걸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요셉처럼 질문이 앞서기 전에 일어났던 그 밤처럼 나도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이해보다 믿음을 확신보다 동행을 대답보다 손길을 따라 오늘도 걷게 해주세요.
작고 낮은 자리일지라도 낯설고 이름 없는 땅일지라도 그곳이 당신의 품이라면 그곳에 나의 이야기를 심겠습니다.
함께 걸어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