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편을 묵상하며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서 곧게 하소서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죄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어보는 시편 5편
아직 도시의 소음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 창문을 타고 흘러드는 회색빛 새벽 공기 사이로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던 연기처럼 마음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모든 하루의 시작은 그날을 살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와 그 안에서 종종 솟아오르는 무력감 사이의 불안정한 경계 위를 걷는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그 아슬아슬한 시작점에서 나는 문득 한 구절의 시편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고요하고 낮은 호흡으로 다윗이 남긴,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어느 누군가의 삶의 한 구석에서 반복되며 울리는 기도.
그 시는 단지 고대의 언어가 아니라 지금도 이 세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숨결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탄식이었고 기다림이었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중얼거림의 형태로 하나님 앞에 놓여지는 내밀한 고백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 속 ‘하기기’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처럼 그것은 입술을 지나지 못하고 마음 안에서만 돌고 도는 언어, 소리보다는 더 내밀한 차원에 머무는 속삭임의 기도였고 그 속삭임은 결국 하나님의 귀에 이르는 가장 진실한 형태의 말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며 가장 낮은 자세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만 그 고백은 단지 신학적 언어의 배열이 아니라 삶의 가장 치열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분명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나 기도하는 이 순간, 그는 왕의 자리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서 있었으며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는 명령이나 확신이 아니라 이해받고자 하는 내면의 절박함과 방향 잃은 마음의 울림이었으며 또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정의를 갈망하는 자의 떨림이었습니다.
그가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리이다”라고 노래할 때 그 말은 단지 문장의 형식을 빌린 확신이 아 니라 스스로 고난과 쫓김의 자리를 지나며 하나님이 진실로 피난처 되심을 경험한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고백의 정수였으며 그 기쁨은 문제의 해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에 있다는 그 하나의 사실에서 흘러나오는 깊고도 조용한 확신이었습니다.
기도가 반드시 분명한 문장이나 정연한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편 5편은 묵묵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때로는 말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전하지 못할 때가 있고 어떤 순간에는 침묵과 숨결 사이에 흘러나온 한 줄기 중얼거림이 오히려 하나님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다리가 되기도 하니까요.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이 구절은 마치 매일 아침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믿음의 자리와도 같아 햇살보다 먼저 일어나 마음을 정돈하고 하나님께 향하려는 그 조심스러운 의지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하루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이 아침의 기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제사장이 떡을 차려 놓듯 한 조각 한 조각 가지런히 펼쳐 놓고 있습니다.
그가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말할 때 그의 기도는 무언가를 요청하는 행위라기보다 하나님 앞에 존재 자체를 놓아드리는 것에 더 가깝고, 그 기다림은 단순한 응답을 위한 초조한 대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더 깊은 신앙의 행위 속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은 점점 깊어져 하나님의 성품과 세상의 모순이 날카롭게 교차하는 지점에 도달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거짓과 아첨, 왜곡된 말이 진실을 밀어내고 도리어 권력을 얻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시편 5편이 묻는 질문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혀는 진실을 담고 있는가?”
“당신은 정의를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침묵 속에 묻히고 있는가?”
이 구절이 지닌 예리함은 단지 고대의 사회를 향한 비판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언어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의 방향성까지도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으며 기도는 바로 그 자리, 즉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다윗은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의인을 부르시는 분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의인’은 단지 율법을 엄격히 지키거나 제사를 정확히 드리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것을 가장 큰 갈망으로 삼고 삶의 길을 곧게 하고자 애쓰며 진실을 말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세상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를 선택하는 사람.
다윗이 바라본 ‘의인’은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부름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곧 진리를 말하고자 주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사는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는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시편 5편은 끝내 기쁨으로 마무리됩니다.
탄식으로 시작된 이 고백은 어느새 찬양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마치 긴 밤을 지나 새벽에 도달한 사람처럼 두려움과 절망을 안고 시작한 기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후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며 끝을 맺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해 영원토록 즐거워하리이다.”
이 문장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오해하고 있었던 ‘피한다’는 행위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세상은 피하는 이를 겁쟁이라 부르고 책임을 미루는 행위로 오해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기뻐하게 되며 그분의 날개 아래 숨은 자는 즐거워지게 된다고.
하나님께로 피한다는 것은 도망이 아니라 돌아감이고 회피가 아니라 신뢰이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다윗은 기도의 마지막에서 이 믿음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도망 중일지도 모르고 그를 괴롭히는 자들의 혀는 여전히 독을 품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보호 아래 기쁨을 노래합니다.
그 기쁨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거기 계시며 그분의 정의와 사랑이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기에 가능한 고백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시편을 이렇게 다시 읽습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탄식도 기도입니다.
정의가 무너진 현실에서도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도 진실을 지키는 입술이 바로 의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듣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여전히 나의 중얼거림을 들으시고 나의 아침 기도를 받으시며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할 때 즐거움과 기쁨으로 나를 감싸시는 분, 그분이 곧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오늘도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안고 그저 조용히 주님 앞에 앉아 있습니다.
무언가를 말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는 오늘, 말이 되기 이전의 것들을 가지고 나아옵니다.
숨결 사이에 끼어 있는 조각 같은 중얼거림, 그것이 오늘 저의 기도입니다.
주님,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아침마다 마음을 정돈하여 하나님 앞에 펼쳐놓기를 원합니다.
모양 없는 마음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주님은 아시기에, 그 진심으로 저를 받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말들이 너무 많은 시대 속에서 저의 혀가 진실을 잃지 않게 하소서.
거짓이 쉽게 유통되고, 아첨이 진심보다 더 쉽게 환영받는 세상 속에서, 말을 아끼는 용기와, 진실을 말할 때의 떨림을 잃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의인이 되게 하소서.
율법의 형식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기를 갈망하는 사람으로, 마음을 곧게 하며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걷는 자로 저를 세워 주소서.
그리고 주님, 제가 피할 곳이 없어 마음이 흔들릴 때, 저를 다시 주님 안으로 숨게 하소서.
그 피함이 도망이 아니라 신뢰와 안식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안에서 기쁨과 찬양이 다시 피어나게 하소서.
나의 말보다 깊은 마음을 아시는 주님, 그 말되지 않는 것들도 주님은 기도로 받아 들이신다는 것을 믿기에 저는 오늘도, 주님 앞에 속삭이듯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은 나의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조용히, 그러나 확신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