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염치없지만... 내일 하루 연가 좀 써야 할 것 같아요.”
짧은 통화였다.
담담한 목소리, 조심스러운 말투.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래요, 그러세요.”
그날은 평범한 하루였다.
수없이 오가는 연락 중 하나.
그가 무엇을 요청했고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기억할 이유조차 없을지도 모를 순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염치없지만.
흔한 말이었다.
부탁을 할 때, 사소한 민폐를 끼칠까 걱정될 때, 우리는 종종 이 말을 꺼낸다.
‘염치없지만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염치없지만 다시 연락드립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 단어를 말문을 여는 관용처럼 써왔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염치'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이야기 하는 단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주 듣던 말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그 말을 곱씹기 시작했고 여기 저기에서 이 말의 어원에 대해 찾아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평소 그 단어를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정확한 뜻도, 그것이 내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는 것을.
염치.
도대체 염치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염치를 체면이나 예의의 한 형태쯤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한 사회적 형식이 아니다.
염치(廉恥)는 그 자체로 깊은 윤리의식이 담긴 단어다.
‘염(廉)’은 청렴함, 곧 스스로를 깨끗하게 지키는 마음.
‘치(恥)’는 부끄러움을 아는 감정이다.
이 둘이 합쳐진 염치는 내가 나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지키는 마음의 선이라 할 수 있다.
그 선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대신 그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선을 잃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염치는 결국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면의 눈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래서 법보다 강하고 규범보다 깊으며 벌보다 먼저 작동하는 마음의 기준이다.
이 태도는 오래전부터 인간됨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기원전 4세기 [좌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라에 염치가 없으면, 아무리 강대해도 반드시 망한다.'
[국어]는 이를 더욱 단호히 말한다.
'염치는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
염치는 개인의 덕목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떠받치는 질서의 뿌리였다.
그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감정이었다.
공자는 이렇게 묻는다.
'사람이 염치가 없다면, 그를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 곧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인간 본성의 네 가지 중 하나로 보았다.
그는 말한다.
'수오지심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다.'
도덕은 법이나 교육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보다 앞서 내가 나를 바라보며 ‘부끄럽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에서 출발한다.
염치는 그 시작점이다.
이러한 전통은 동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를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 말했다.
그 자리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자기 안의 질서를 지키는 것, 곧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상태가 정의의 본질이었다.
로마의 키케로는 pudor(수치심)를 사회적 미덕의 기초로 보았다.
그는 단언한다.
'수치심 없는 용기는 야만이다.'
쇼펜하우어는 '도덕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 역시 염치를 도덕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 감정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요즘 세상은 오히려 염치가 없을수록 잘 산다는 말이 떠돈다.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회피하고, 책임을 지기보다 전가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 무시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정치에서도, 방송에서도, 회사에서도 ‘염치 없음’은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감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진짜 조심스럽고 섬세한 마음들은 점점 자리를 잃는다.
염치 있는 사람은 소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보는 무능력으로, 침묵은 비겁함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조용한 존중은 점점 숨을 곳을 잃는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염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날 아침 통화에서 나는 그것을 다시 들었다.
“염치없지만…”
그 말은 너무 조용해서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당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싶지 않다는 절제와 나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싶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 한마디는 그가 나에게 보낸 조용한 존중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온 그 감정의 흔적일 것이다.
염치는 강요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지키고 싶은 도덕의 마지막 경계이며, 아무도 보지 않을 때조차도 나를 지켜주는 윤리의 그림자다.
나는 그날 이후, 종종 그 말을 떠올린다.
그 한마디가 내게 준 감정은 단순한 미안함이나 예의가 아니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다움’에 대한 회상이었다.
염치.
그것은 나의 말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조용한, 그러나 가장 분명한 선.
내가 누구이고 싶은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 앞에 나를 세워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잃지 말아야 할 마지막 윤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