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을 오릅니다

시편 15편을 묵상하며

by 참지않긔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편 15편을 들으며







저는 시편 15편 앞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붙들려’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그리 길지 않은 시편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기려 했으나, 다윗이 건넨 첫 문장—“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는 제 마음을 내리누르는 돌처럼 깊게 내려앉았습니다.

마치 예배당 문 앞에 멈춰 선 채,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가장 개인적인 물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질문의 울림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나름 성실하게 이어왔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 질문은 저의 내면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비추었습니다.

주의 장막에, 주의 산에—곧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머무는 자리—거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다윗은 그 물음을 던지면서 단 한 줄도 자기변명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하나님의 얼굴을 향해 “누가 설 수 있겠습니까”라고만 묻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머무르다’는 동사는 **יָגוּר(야구르)**이며, 이는 단순히 잠시 체류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피난처를 구하는 거주자처럼 거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서서 “누가 주의 장막에 야구르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는 건, 곧 자신이 그 집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되길 갈망하는 이방인 같은 태도로 묻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물음 앞에서 저 또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시편은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열 가지의 삶의 덕목을 하나씩 펼쳐 보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의를 실천하며, 진실을 말하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혀로 헐뜯지 않으며, 비방하지 않고, 악인을 멸시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귀히 여기고, 맹세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않으며, 이자를 받지 않으며,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는 사람.




이 덕목들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제 발걸음은 성소의 문턱에서 멈추고 맙니다.

저는 그 어느 한 항목도 온전히 살아냈다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직함은 종종 손해를 두려워하며 타협해왔고, 진실함은 사람의 시선을 앞세우며 조용히 감추었습니다.

제 말은 누군가를 살리기보다는, 방어하고 꾸미고, 때로는 외면하는 데 더 익숙했으며, 제가 비난하지 않은 순간조차 침묵으로 동조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편은 저에게 율법의 조항처럼 다가왔습니다.

높고 단단한 기준이 눈앞에 쌓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 시편은 정죄의 담장을 세우는 대신,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만드는 신비한 부름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은 끝내 선언합니다.

“그는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자, 혹은 그것을 사모하는 자, 혹은 그것 앞에서 떨고 있는 자—그는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저는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뒤집히고, 순간의 감정과 피로, 미움, 비교심, 자기 연민 속에서 쉽게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람도, 그 기준 앞에 떨고 앉은 그 한 사람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게 붙드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제게 규율보다 크고, 교훈보다 따뜻하며, 회초리보다 깊은 위로였습니다.




이 시편은 단지 도덕적 강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한 존재의 방식이며,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영혼이 빚어낸 삶의 모습입니다.

그 삶은 법보다 자유롭지만, 자유롭기에 더 엄숙하고, 누구보다도 자기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의 걸음입니다.




저는 자주 넘어집니다.

자주 말이 앞서고, 자주 판단이 앞서고, 자주 변명으로 자신을 감쌉니다.

하지만 이 시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고 속삭입니다.

‘네가 그 모든 기준을 다 지키지 못했더라도, 네가 그 기준 앞에 무릎 꿇는다면, 나는 너를 장막으로 들이겠다’고.

하나님의 산은 자격으로 오르는 곳이 아니라, 사모함으로 기어오르는 곳임을 저는 이 시편을 통해 배웁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시 이 말씀 앞에 머뭅니다.

높으신 하나님의 거처 앞에서, 거룩한 성산을 바라보며, 어제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말의 무게를 헤아리고, 행동의 방향을 다시 가늠하며,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 사랑이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주의 산에 오르게 하소서.

이 말씀 앞에서 진심을 내어 보이며 기도할 수 있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님, 말씀은 아름다운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고요한 호수처럼 맑고 단단한데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서 휘청였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라 하셨지만 정직이 손해가 되는 자리에 설 때면 저는 그리 용기 있지 못했습니다.

말을 아껴야 할 때 말이 많았고 입을 열어야 할 때 입을 다물었습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다고 죄가 없는 줄 알았지만 침묵이 꼭 중립은 아니더라는 걸 너무 늦게 배웠습니다.




회사의 회의실 한 귀퉁이에서 누군가를 향해 무심히 던져진 말이 방처럼 울릴 때 저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맞장구치진 않았지만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대화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안심했지만 제 입가의 미소가 누군가를 겨누는 화살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혀는 말하지 않고도 누군가를 상하게 했습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헐뜯지 아니하며.”

주님, 저는 침묵으로 헐뜯었습니다.




맹세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쉽게 말했고 너무 빨리 철회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저는 상황 탓을 하며 빠져나갔습니다.

한 번은 친구와 한 약속을 업무를 핑계로 미루었고, 한 번은 기도하겠노라 한 말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저는 입술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말씀 앞에 서니 제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묶었고, 상하게 했고, 기다리게 했는지 알게 됩니다.

말은 바람이 아니라 씨앗이었습니다.

제 입에서 떠난 말들이 자라나 누군가의 하루에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제가 손해를 무서워했던 것이 죄였다는 것을 저는 이제야 조금씩 인정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삶의 방식은 이 세상에서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보이고 의인을 존귀히 여기는 것은 영향력 없는 사람 곁에 머무는 것처럼 보이며 악한 자를 멸시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주류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자주 타협했고 그 타협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익숙해지는 쪽을 가리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가 외면하고 싶던 그 불편한 길을 ‘주의 산’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주의 산 아래에 서 있습니다.

그 위를 감히 오르지는 못하고 그저 바라보며 떨고 있습니다.

그곳은 너무 높고 저는 너무 작습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오늘도 그 산을 사모합니다.

그 장막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완벽하진 못하겠지만 그 삶의 언저리에라도 닿고 싶습니다.




어쩌면 신앙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고 피곤한 선택들 안에서 진실하게 서려는 태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직함이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진실한 말이 때로는 외로움을 가져오더라도,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주의 장막을 향해 걷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말씀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 안에서 말씀을 더 사모하게 되고 그 사모함이 또 저를 기도하게 합니다.

주님, 제가 오늘 하루도 흔들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흔들린다 해도 결국 주님께 돌아오게 하소서.

그 산은 높고 저는 자주 미끄러지지만 주님께서 제 발을 지탱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주님, 저를 다시 부르소서.

그리고 제 마음이 아직 주의 말씀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로 이 떨림을 거두지 마소서.




주님, 저는 지금도 흔들립니다.

어쩌면 더 많이 흔들립니다.

시편 15편을 마음에 새긴 날부터 제 안의 진실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것이 복인지 심판인지 몰랐습니다.

이전엔 흐릿하게 넘어갔던 제 말과 행동의 결이 말씀 앞에서는 도려낸 듯 아파 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견고해 보이던 저의 신앙도 조용히 그 말씀 아래 두니 얼마나 덧없이 얇고 부끄러운지 숨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로 그 수치와 떨림이 저를 다시 당신께로 이끌었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고 넘어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처럼 당당한 척했습니다.

그런데 시편은 말합니다.

“그는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저는 그 구절 앞에서 오히려 고개를 들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저에게 “흔들리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흔들릴지라도 내가 너를 지탱하겠다”는 약속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주의 장막에 머문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요.

저는 그것을 점점 ‘평안’보다는 ‘정직한 싸움’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그동안 하나님의 임재란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라고만 여겼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내면이 잠잠해지고 모든 것이 풀리는 공간.

그러나 시편 15편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거처는 오히려 진실한 싸움이 시작되는 자리였습니다.

나를 꾸며왔던 말들, 회피해왔던 선택들, 외면해왔던 마음들을 마주하게 하시고 기꺼이 그것들과 겨루게 하시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싸움이 끝날 때, 아니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한 마디로 저를 안아주십니다.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 한 마디가 제 안에 오랜 시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문장이 아니라 기도가 되었습니다.

주님,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아니, 흔들릴지라도 당신 안에서만 흔들리게 하소서.

사람들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만 부끄럽게 하시고 거기에서 회복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이제 이 시편은 저에게 기준이 아니라 방향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완벽한 삶을 살아내려는 압박으로 다가오지 않고 하나님께로 계속 나아가기 위한 걸음으로 제 안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덕목들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겠지만 그 하나하나의 문장 앞에서 멈춰서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주님, 제가 오늘은 말을 아껴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약속한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오늘은 작은 정직을 선택하겠습니다.

큰 의는 어렵지만 작은 정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이 곧, 주의 성산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등산로에 표지판이 하나씩 박혀 있는 것처럼 시편 15편의 말씀들이 저를 이끌어 갑니다.

때로는 숨이 차고 때로는 잠시 멈추고 싶지만 그 길의 끝에는 주의 장막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저는 오늘도 조금씩 오릅니다.




주님, 이 시편을 읽을 때마다 느꼈던 두려움이 이젠 감사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구절들이 이제는 저를 가장 깊은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당신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기에 저는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했던 제 안의 무너짐과 갈등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고백 이후에 여전히 제 손을 붙들어 주시는 당신의 인자하심을 저는 이 짧은 시편 안에서 배웠습니다.




오늘도 흔들릴 것입니다.

말이 앞서고, 마음이 늦고, 약속은 여전히 버거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이 말씀을 꺼내 읽겠습니다.

다시 그 산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께서 “너는 내 장막에 머물 자다”라고 말씀하실 그날까지 조용히, 그러나 정직하게 이 말씀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그렇게 빚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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