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시는 하늘 앞에서

시편 19편을 묵상하며

by 참지않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편을 들으며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하늘은 너무나 분명하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려오던 하나님의 존재.

그러나 놀랍게도 제 마음은 그 고요한 외침에 무뎌져 있었습니다.

하늘은 매일같이 말씀하고 있었지만 저는 오랫동안 그 말을 듣지 않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저 그 광경을 배경화면처럼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지요.

시편 19편을 다시 묵상 할 때, 저는 문득 그 하늘이 예배의 언어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단지 자연의 장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울려 퍼지는 성전의 천정 같았습니다.




하늘은 말이 없고 소리도 없고 들리는 음성도 없지만 시인은 그 하늘이 말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고요.

이 구절 앞에서 저는 많은 시간을 멈춰 있어야 했습니다.

제 귀가 닫혀 있었고 제 눈은 흐려져 있었으며 제 가슴은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가는 길목조차 열어두지 않았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으셨고 저만이 멀어졌을 뿐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말씀은 항상 거기 있었고 하늘은 매일같이 찬양하고 있었고 피조물은 끊임없이 주를 노래하고 있었는데 저만이 그 예배에서 이탈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하늘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기후의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품은 책처럼.

그 장엄한 곡선과 무심한 구름의 흐름 안에서 말씀을 읽으려 애썼고 낮과 밤의 교차 속에서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려 했습니다.

그러자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은 단지 글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여전히 말씀으로 저를 불러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리치는 부름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이었습니다.

그 부름 앞에서 저는 점점 말문이 막혀갔고 오래도록 말하고 싶던 욕망이 가라앉고 묵상이라는 이름의 침묵만이 남았습니다.




시편은 자연에서 율법으로 나아갑니다.

처음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말하던 시인은 어느 순간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전환은 부드럽지만 선명하며 동시에 너무도 자연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다 보면 언젠가는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간절한지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내면의 허기, 그 말씀이 들어오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가 갈라지고 마는 고요한 절망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소성케 한다'는 말의 의미를 삶의 결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위로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꺾여버린 나를 다시 세우는 일, 꺼져가던 숨을 다시 불어넣는 일, 부서진 마음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 새살을 입히는 일이었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저를 다시 살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요.

오랜 시간, 저에게 있어서 '정직한 것'은 늘 무겁고 냉정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정직은 날이 서 있고 판단하며 선을 긋는 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정직은 그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했지만 따뜻했습니다.

판단이 아니라 초대였고 규정이 아니라 안아주는 손길이었습니다.

저는 그 정직 앞에 안도했고 오히려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주의 명령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고요.

저는 그 순결함에 스스로 눈을 감고 살아왔습니다.

눈을 감으면 죄도, 고통도, 부끄러움도 안 보일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감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밝게 하겠다고.

그 빛은 눈부셨지만 동시에 따뜻했고 두렵지만 아름다웠습니다.

말씀은 어둠에 익숙한 제 눈을 다시 열어주셨고 저는 비로소 주의 시선 안에 머무는 평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편의 고백은 점점 더 내밀해집니다.

'숨은 허물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소서.'

이 기도는 단순히 도덕적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도 정확하게 제게 하신 말씀이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죄, 제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생각의 조각들, 선한 척하지만 뒤틀린 동기들, 이 모든 것이 '숨은 허물'이었고 저는 그것들에 둘러싸여 살아왔습니다.

저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무수한 오염들이 제 안에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비추기 전까지 저는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그런 저를 속속들이 드러내셨고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셨습니다.

그 과정은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해방이었습니다.

죄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주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의로 지은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너무도 절실했습니다.

고의라는 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알고도 저지른, 의지를 담은 선택을 의미합니다.

저는 때때로 말씀을 알면서도 외면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태도가 얼마나 자주 제 삶을 지배해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는 단지 행위가 아니라 권세입니다.

나를 주장하는 힘, 나를 내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는 허용, 그 모든 것이 '고의로 지은 죄' 안에 있었고 저는 그것에 자주 끌려 다녔습니다.

그러니 시인의 기도는 곧 제 기도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이것은 항복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이제는 주께서 저를 주장해주십시오.

죄가 아닌 주의 말씀이 제 안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저는 다시 죄의 습관으로 돌아가고 말 테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시편은 조용한 절정에 이릅니다.

'나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구절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이 한 줄 앞에서 말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모든 해석과 이해를 넘어서 이 고백은 너무도 온전했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속에서 머물던 말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삼켰던 기도들이 이 한 문장 안에서 풀어졌습니다.

하나님, 제가 한 말들, 제가 한 생각들, 그것들이 주 앞에 기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합니다.

그 말들이 다듬어지지 않았을지라도 그 묵상들이 온전하지 않았을지라도 주께서 제 마음의 중심을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는 작고 조용했지만 제 영혼 전체를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이 글은 결국 하나의 긴 숨입니다.

시편 19편을 따라 걷는 고백의 길이며 말씀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고요한 항복입니다.

이 항복은 패배가 아니라 회복이며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며 저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주님, 나의 말과 묵상이, 당신께 닿게 하소서.

당신께 기쁨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다시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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