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1편을 묵상하며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비록 그들이 왕을 해하려 하여 음모를 꾸몄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시편 21편을 들으며
시편 21편은 다윗의 기쁨과 감사의 노래로 시작됩니다.
그는 여호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인해 크게 즐거워합니다.
이 기쁨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응답은 다윗에게 큰 기쁨과 만족을 안겨주었으며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영광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복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나 권력의 확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서 오는 영적인 충만함이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안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생명을 구하게 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생명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참된 생명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광과 존귀를 입히시고 기쁨으로 그를 즐겁게 하셨음을 찬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축복하시고 영원히 복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다윗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시편 21편의 후반부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찾아내시고 그들을 멸하신다는 이 시편의 후반부를 대할 때마다 제 안에는 늘 조심스러운 침묵이 먼저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에 관한 시편의 언어는 날카롭고 맹렬하여 저의 신앙이 그 앞에 설 때마다 거짓 없는 정직함을 요구받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다윗은 담대히 고백합니다.
'주의 손이 원수를 찾아내리이다 주께서 진노하실 때 그들은 불붙는 풀무 같을 것이며 주의 분노가 그들을 삼키리이다.'
이러한 구절들을 저는 쉽게 지나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제 안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미묘한 악의 그림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향한 정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얼마나 자주 나 스스로 하나님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는지를 직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은 단지 외적 적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숨어 있는 교만과 방자함,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살고자 했던 수많은 내면의 반역들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시편의 심판의 불꽃은 파괴만을 위한 불이 아니라 죄의 뿌리를 태워 정결케 하시는 거룩한 불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끊으실 것’이라 말하며 악의 대물림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것을 찬양합니다.
저는 이 말씀 앞에서 다시 한번 저를 돌아봅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죄와 악이 어떻게 구조가 되고 문화가 되며 세대를 타고 흐르는지 너무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복수심, 탐욕, 이기심, 자존심을 가장한 지배욕, 이런 것들이 어떻게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 역사의 흐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뿌리마저 뽑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순간의 정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회복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표면적인 변화에 만족하지 않으시며 심연 속에 숨겨진 불순물까지도 태우시고자 하십니다.
저는 그 불꽃이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간절히 원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영혼도 그렇게 정결해지기를, 주 앞에 오롯이 서기를, 변명 없는 고요로 나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심판의 불이 타인에게만 향하지 않기를, 먼저 나 자신을 태우기를 기도합니다.
내 마음 깊은 곳의 교만,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려는 성급함, 은혜를 받은 자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공로를 쌓아 살아가려는 잘못된 태도,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빛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고 주의 불로 소멸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분의 진노는 파괴를 위한 분노가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거룩한 열정이며 그분의 심판은 끝장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친히 정결케 하신 자만이 비로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저는 배우고 또 배웁니다.
그렇기에 이 시편의 마지막 구절은 더욱 빛납니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
저는 이 구절 앞에서 다시금 숨을 고르고,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이 고백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아님을,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높임을 받아야 함을 인정하는 고백이며, 자기를 비우는 기도의 절정입니다.
주의 능력이 높임을 받는다는 것은 내 능력이 멈추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며 주의 권능이 노래되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이룬 업적과 영광이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고백을 삶으로 살아내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의 고백이 아니라 매일의 결단으로, 찬양으로, 침묵으로 살아내고 싶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삶은 단지 입술로만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며 어떤 일이 제게 주어지든 저는 그것을 주의 능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주의 자비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주의 뜻을 드러내는 삶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이 시편의 고백이 제 삶의 고백으로 녹아들기를 소망합니다.
내 입술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기쁨이 되기를, 내 걸음의 방향과 삶의 무게가 하나님 앞에서 늘 바른 길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