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을 묵상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을 처음 외웠던 때를 떠올리면 학생회때 처음 암송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이 말씀을 마주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쉬운 암송이 아니었습니다.
익숙했던 음절들은 낯선 무게를 품고 가슴 깊은 곳을 두드렸습니다.
그 구절이 다가온 날 저는 묵묵히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판단과 해석 이전에 그 말씀 앞에 한동안 조용히 머물렀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은 풍족함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결핍을 인정한 뒤에야 건너갈 수 있는 은혜의 고백이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을 속삭이지만 하나님은 내가 부족함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부족함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한 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삶의 균형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께서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다는 이 말씀은 격한 생의 중심에서 나를 잠시 내려놓게 하셨던 조용한 손길로 다가옵니다.
평안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머물게 하시는 분 앞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삶의 고단한 장면들이 연속될수록 초장과 물가는 더 멀리 있는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거기까지 나를 이끄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초장을 이끌어 내 마음 안으로 들여오셨습니다.
쉼은 공간이 아니라 상태였고 쉴만한 물가란 어느 곳도 아닌, 하나님 곁의 자리를 의미했습니다.
그분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이 말씀 앞에서 저는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영혼이 지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누구보다 먼저 아셨습니다.
저는 지침의 언어조차 잃어버렸던 어느 날 말씀 없이도 조용히 가까이 다가오셨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어떤 위로나 조언보다 그저 나를 놓지 않으셨던 손길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는 회복된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 생명은 고요하고 단단한 것이었습니다.
흙먼지로 가라앉은 심령 위에 조용히 내리는 비처럼 깊고 조심스럽게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은 곧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나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저는 종종 제 의지로 무언가를 이뤄냈다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제 삶에 새겨지도록 하신 섭리였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그 한 구절은 제 노력이 아닌 주님의 신실하심이 이 길의 근거였음을 고백하게 만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구절은 낮은 곳을 걸어본 이들에게는 단지 신앙의 선언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의 고백이 됩니다.
저는 그 골짜기를 다녔습니다.
소리도, 빛도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를 의심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은 부재의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되레 그것은 하나님이 말없이 나와 걸으셨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분은 조명처럼 나를 비추지 않으셨지만 그림자처럼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저를 살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저를 안위하신다는 고백은 이제 제게 단순한 비유 이상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보호의 도구이자 인도의 손짓이며 사랑의 훈육이었습니다.
넘어지려 할 때는 지팡이가 저를 붙들었고 엉뚱한 길로 빠지려 할 때는 막대기가 조용히 제 발을 돌려놓았습니다.
제게 상처처럼 느껴졌던 때조차도 그것은 오히려 저를 보존하려는 깊은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자유를 존중하시되 그 자유가 저 자신을 파괴하지 않도록 가만히 경계를 두셨습니다.
그 경계 안에서 저는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진정한 자유란 어디로든 갈 수 있음이 아니라 올바른 길 위에 서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이 말씀은 복수나 승리의 장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존재가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상을 차려주신 그 자리는 억울함이 해소된 장소가 아니라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원수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고, 갈등은 남아 있었지만 주님은 그 앞에서 나를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나를 조용히 그 자리에 앉히셨고 차려진 식탁 위에 '너는 사랑받는 자다'라는 침묵의 언어를 올려놓으셨습니다.
그 상 위에 놓인 것은 승리의 전리품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런 설명 없이 오가는 신뢰였습니다.
저는 그 식탁 앞에서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아도 되었고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누군가가 무너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리를 얻게 될 때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제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신 곳이었고 비로소 제가 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기름은 구별된 이에게 허락되는 존귀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격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 부으심은 더욱 놀라운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괜찮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 음성이 제 존재의 바닥을 천천히 채워갔습니다.
제 잔이 넘친다는 것은 무언가를 과하게 소유했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채워진 은혜가 저를 넘어서 흘러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위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저를 통해 나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은혜는 닫힌 그릇 안에 고이지 않고 열린 삶을 통해 흘러갑니다.
제 삶이 누군가의 갈증을 잠시나마 적셔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이 잔이 넘치는 이유가 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이 구절은 처음에는 위로로 다가오지만 곱씹을수록 당황스럽게 느껴집니다.
‘따른다’는 말이 그리 강한 어조는 아니나 원어가 내포한 뜻은 훨씬 적극적입니다.
그것은 추적이고, 집념이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그렇게 나를 끝까지 따라오십니다.
내가 멀리 도망쳤던 날에도 그분은 발걸음을 늦추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그분을 잊은 순간에도 그분은 나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은 때때로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분이 나를 붙들고 계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여정입니다.
그분의 선하심은 내가 마땅히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인자하심은 반복되는 나의 불성실을 견디고도 남을 만큼 깊고도 넓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나를 지켜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되찾고자 하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나는 내 자신을 내려놓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저를 내려놓지 않으셨습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 뒤를 따랐다는 이 고백은 나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였습니다.
그분이 끝까지 나를 놓지 않으셨기에 저는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고백은 목적지에 도달한 자의 감탄이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떠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의 결단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특정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그분과 함께 거하는 상태 그 자체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인정이나 성취로부터 벗어나 존재가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
더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하나님 앞에서 내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그곳이 곧 여호와의 집입니다.
거한다는 말은 잠시 머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식을 찾았다는 뜻이고 그 안식은 결코 정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해지는 다정한 고요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거한다는 고백은 나의 영혼이 제 자리를 되찾았다는 표현이며 하나님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돌아왔다는 선언입니다.
이 시편은 길지 않지만 그 여정은 깊고 넓습니다.
시작은 부족함에서였고 그 부족함은 목자 되신 주님의 존재 안에서 충만으로 바뀌었습니다.
초장은 쉼의 장소였고 골짜기는 동행의 장소였으며 상은 회복의 장소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지나서 마침내 이 시는 한 곳으로 향합니다.
여호와의 집.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며 나의 영혼이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자리입니다.
저는 더는 묻지 않습니다. 더는 달려가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 앞에 앉아 고요히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돌아왔습니다. 당신이 나를 기다리신 그 자리로. 이제, 당신 안에 머물겠습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