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4편을 묵상하며
세상은 소유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 합니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도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들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자기 것이라 여기려 합니다.
하지만 시편 24편은 그 첫 구절에서 단호히 말합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이 한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착각과 자기중심의 시선을 내려놓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든, 또 어떤 자리에서 살아가든, 그것은 본래 우리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데서 진정한 믿음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인식이 주는 울림은 단순한 겸손의 요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은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견고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세상은 유한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세계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손에 들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이어 하나님을 향한 접근에 관해 묻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이 물음은 하나님과의 거리를 되짚게 합니다.
그분의 임재가 머무는 자리로 향하려는 이에게 이 시편은 자격을 묻습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타협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정결하며, 허탄한 뜻을 품지 않고, 입술에 거짓이 없는 자.
이 조건들은 외면의 정돈을 넘어 내면의 정직과 투명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됩니다.
그 기준은 나의 결단이나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리임을.
결국 이 시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르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로 인해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는지를 묵상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한 분으로서 이 조건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정결하신 그분은 거룩한 산에 오르실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우리를 그 자리로 이끄실 수 있는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나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의 후반부는 문을 향한 선포로 전환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이 외침은 단지 고대 성문을 향한 소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향한 권면으로 들립니다.
마음 깊은 곳에 굳게 닫혀 있는 문.
상처로 인해, 의심으로 인해, 혹은 익숙한 체념으로 인해 닫혀 있던 그 문이 이제는 들려야 할 때입니다.
영광의 왕이 들어오시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물음—“영광의 왕이 누구시냐”—는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누구를 왕으로 섬기고 있는지를 묻는 고백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 주인이신가, 혹은 내가 여전히 주인의 자리에 있는가.
그 질문은 매번 다르게 다가오지만 답은 늘 하나입니다.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
그분은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을 이기셨으며 이제는 승리한 왕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문들아 들릴지어다”라는 외침은 단지 외부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의 굳은 의지를 향한 말이며 하나님 앞에 자주 닫혔던 감정의 문, 순종의 문, 기도의 문을 여는 기도입니다.
시편은 마지막에 이르러 한 민족의 정체성을 조용히 불러냅니다.
“이는 야곱이라 주를 찾는 족속이로다.”
야곱은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속이기도 했고 도망치기도 했으며 끝까지 하나님과 씨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야곱을 통해 언약을 잇고 그 이름을 부르심으로 민족의 중심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완전하지 않으나 주를 찾는 이들.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갈망하는 이들.
시편 24편은 바로 그 야곱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며 끝맺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언처럼 덧붙여집니다.
“그는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이 짧은 결구 속에 담긴 여운은 오랫동안 머뭅니다.
삶은 여전히 복잡하고 내 안의 문들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왕께서는 오늘도 기다리십니다.
들어오시기 위해, 거하시기 위해, 우리를 다스리시기 위해.
그분의 통치 아래 사는 삶.
그것이 진정한 평안이며 진정한 예배입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도 조용히 이 시편을 다시 읊조립니다.
그리고 제 안의 문이 들릴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마음을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