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3의 첫번때 액트에서 최종 보스는 해골왕입니다.
해골왕는 레오닉이란 왕인데, 디아블로 씨리즈를 플레이하다보면 가장 불쌍한 가문이기도 합니다.
이 레오닉왕의 둘째 아들은 디아블로1에서 디아블로의 숙주가 되고, 레오닉왕의 첫째 아들은 디아블로2에서 디아블로를 죽인후 자기의 이마에 영혼석을 박아 디아블로를 봉인하는 영웅으로 출현합니다.
레오닉왕은 악에 잠식당하여 부인까지 죽이는 광기의 인물이 되지요.
이 해골왕에게는 한명의 충신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라크다난입니다.
이 라크다난은 레오닉왕을 시해하고...
죽어서까지 해골왕이 부활하지 않도록 레오닉왕의 무덤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자신의 왕을 시해하고, 그 왕이 부활못하도록 죽고 나서도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게...
그리고 그를 충신이라고 부르는게...
사람이 지키는 것은 두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가치이거나 입니다.
장세동은 사람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그가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의 주군일 뿐입니다.
라크다난은 가치를 지치는 자입니다.
자신의 주군인 해골왕이 품고 있는 왕의 가치, 그리고 그가 지키고 싶어했던 그의 왕국, 왕으로서의 존엄심...
이런 것들을 지키고 싶어 했기에..
자신의 주군인 해골왕을 시해하고, 그의 부활을 죽고 나서도 막아 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내가 나의 반려자, 나의 애인으로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품고 있는 내면적인 이상.. 품성.. 그리고 그의 가치까지 사랑하는 것인가 한번 생각해 봅니다.
비단, 애인뿐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또 어떤가요?
단지, 사람만을 쫒아 사람을 사귀어 나간다는 것은 인간관계에 얽매여서 그 사람의 온전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가 어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제어하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 '우리가 남이가...'를 되내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망국적 지역감정이 생성되는 것도 가치를 바라보지 못하고, 단지 사람만을 바라보는 관계의 한계선상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가진다는 것...
단편적인 만남의 차원을 넘어서..
서로간의 인격적 만남의 장으로 넘어설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라크다난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나의 이상, 나의 존재를 위해서 칼을 들어 나를 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가진다는것이 어쩌면...
큰 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디아블로를 플레이하면서 잠깐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