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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entMeditator 3시간전

<보통의 가족> 지켜야 할 것과 무너져가는 것들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은 그의 전작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 작품입니다.
감독의 이름만 들으면 떠오르는 건 보통 잔잔한 멜로, 그러니까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처럼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서정적 감정을 담은 영화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런 감성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복잡하고 긴장감 넘치는 가족 드라마에 서스펜스를 결합해 새로운 장르적 실험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딜레마와 충돌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허 감독은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도 그동안 그가 자주 다뤄왔던 감정적 섬세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가족은 이전 작품들보다 더 복잡하고 심리적이며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단순한 감정의 울림을 주기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단위가 겪는 도덕적 갈등과 문제들을 깊이 탐구하게 만듭니다.




우선 이 영화는 원작 소설 더 디너(The Dinner)를 한국적 정서에 맞게 각색해, 우리 사회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재해석합니다.
원작은 네덜란드에서 가족이 저지른 범죄를 둘러싼 도덕적 문제와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다루고 있지만, 보통의 가족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가족주의, 체면 문화,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더욱 부각됩니다.
특히 영화에서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려는 본능과 도덕적 기준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도덕적 타협과 그로 인한 갈등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요?
부모들이 자식의 잘못을 덮기 위해 도덕적 기준을 타협하는 선택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숨기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긴장은 영화 내내 서스펜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한 가족 갈등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는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도덕적 경계를 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이런 질문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다른 길을 걷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에서 감독은 잔잔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서정적 연출을 선보였지만 보통의 가족에서는 감정의 폭발과 강렬한 심리적 대립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인물들 간의 갈등은 훨씬 더 복잡하고 강하게 표현되며 서스펜스적 긴장감이 전작들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허 감독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더 큰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드러냅니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재환은 냉정하고 실리적인 변호사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법적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한 후회를 느끼고 자식들의 진실을 마주하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반면 장동건이 맡은 재규는 도덕적 신념을 지키려 하지만 결국 현실의 벽 앞에서 그 신념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의 캐릭터는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도덕적 원칙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을 겪으며 이 과정에서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김희애가 연기한 정연은 자식들을 보호하려는 모성애로 갈등에 휘말리며 그녀의 연기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합니다.
정연은 자식을 위한 희생을 감당하지만 그 희생이 결국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전쟁을 그리면서도 그 배경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체면 문화와 성공에 대한 집착이 깔려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저지른 범죄가 드러나면 가족의 명예가 실추될까 두려워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갈등을 키우는 선택을 합니다.
특히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에서 영화는 세대 간 갈등의 현실성을 날카롭게 묘사합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기준을 자식에게 강요하지만 자식들은 그 기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큰 혼란에 빠집니다.




허진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서 가족이라는 사회적 단위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결말은 해소되지 않은 갈등과 도덕적 질문을 남긴 채 끝납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그 선택이 가족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답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이로써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성찰하고 고민하게 만듭니다.




결국 보통의 가족은 허진호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자 그의 연출적 역량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된 작품입니다.
멜로에서 서스펜스로의 전환은 그의 연출력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보여주는 증거이며 가족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허진호 감독이 단순한 감정적 여운을 넘어 도덕적 질문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지는 중요한 작품임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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