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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entMeditator Oct 18. 2024

떠나고 싶은 마음, 머물러야 할 이유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장건재 감독이 장강명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주계나라는 여성이 한국에서의 고된 삶을 뒤로하고 뉴질랜드로 떠나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영화는 주인공 계나(고아성)의 내면적 갈등과 현실적 고민을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억압적인 환경과 외국에서의 도피적 생활을 교차로 보여주며 현대 한국 청년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결혼, 직장, 그리고 가족의 기대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계나는 뉴질랜드에서 비로소 자유를 찾으려 하지만 그곳에서도 결코 쉬운 길만은 아닙니다.
영화는 이런 현실 도피가 과연 진정한 해방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속 계나는 연인과의 결혼을 고민하면서도 공시생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느끼고 동시에 어머니의 전세금 부담을 요구받으며 점점 압박감을 느낍니다.
이런 배경에서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외국에서의 생활 역시 만만치 않은 도전입니다.
영화는 그녀의 뉴질랜드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과거를 교차로 보여줍니다.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겪는 일상적인 어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한국에서의 억압적인 기억들이 교차되며 영화의 흐름을 이룹니다.
이 구조는 계나의 심리적 변화와 내면의 갈등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영화는 단순히 한국 사회의 문제점만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장건재 감독은 계나의 선택이 언제나 옳다고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나 스스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많고 불평이 많으면서도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도피를 선택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솔직히 드러냅니다.
계나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보다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계나를 무조건적인 희생자로만 보지 않게 됩니다. 계나의 여정은 단순히 억압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점차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그려집니다.
이는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계나의 주변 인물들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셰프 재인(주종혁)과 스카이 점퍼 앨리 같은 캐릭터들은 계나의 여정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그녀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특히 재인과의 관계는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며 그와의 대화는 계나가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존재는 영화의 현실적 무게를 덜어주고 때로는 웃음을 주기도 하며 이야기에 다채로움을 더해줍니다.





그러나 영화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다소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초반부에 공들여 쌓아온 감정선이 결말 부분에서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듯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계나의 뉴질랜드 생활과 한국에서의 과거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 다소 끊기기도 하고 서사의 마무리가 빠르게 끝나는 인상을 줍니다.
원작 소설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려다 보니 발생한 문제일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오는 기대와는 달리 이 영화는 한국을 비판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선택과 갈등을 조명합니다.





특히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계나의 여동생 주미나(김뜻돌)가 남자친구의 밴드 공연을 보러 가는 장면입니다.
김뜻돌이 지하공연장에서 부르는 '코발트'라는 곡은 한국 사회에서 버텨내며 저항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장면은 계나의 도피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 내에서 살아남으려는 젊은이들의 힘겨운 몸부림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는 그들을 죽비를 맞으며 절을 고치려는 레지스탕스처럼 그려내며 계나와는 또 다른 방식의 저항을 보여줍니다.





결국 <한국이 싫어서>는 단순한 사회 비판 영화가 아닙니다.
주인공이 한국을 떠나는 선택은 한국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계나의 여정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행복의 기준을 재고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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