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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목서의 달달함과 우롱의 달달함, 그리고 뽀얀 우유향

루피시아 6296. 대만계화우롱 극품

by 미듐레어

루피시아를 너무 오래 쉬었나 싶어서 이제 슬슬 다시 또피시아 아저씨로 돌아가볼까 싶다. 오늘은 대만계화우롱 극품. 루피시아의 계화 대표주자는 츠키니사쿠로 가을에 한정차로 나오는 계화홍차인데 그 계화를 블랜딩 한, 넓게 보면 가향이고 좁게 보면 비가향 블랜딩 우롱차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비가향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누군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런 걸 따지는 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그럼 뭐가 중요하냐, 하신다면 바로 대만 산지차라는 사실. 루피시아는 일본 브랜드이기 때문에 이런 차는 수량한정 등으로 나오다가 금방금방 폐번되기 쉽다. 수량도 많지가 않은지 다카마쓰 지역부터 훑어서 총 7군데 넘는 루피시아 매장을 들렀으나 구하지 못하다가 한국에 와서 결국은 직구로 구했고 얼마 안 지나서 금방 매진이었다. 지금은 제품 상세페이지도 내려간 상태. 나름 스페셜했던 이 차는 30g 봉입으로 1800엔. 상미기한은 제조 1년이다. 30g은 부족할 것 같아서 두 개 샀는데 하나 샀으면 큰일 날뻔했다.

대만계화우롱 알고보면 극품

Plentation specified, 그러니까 다원차 라인이라는 뜻일 텐데 특정 다원을 적어두진 않은 걸로 봐선 산지나 현지 OEM 느낌으로 나오는 차일수도 있겠다. 레시피도 중국식으로 차를 많이 넣고 짧게 우려서 여러 번 마시는 방식으로 적어뒀다. 이런 종류의 차, 보통은 중국차가 단가가 조금 더 올라가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마시는 g당 ml 수를 생각하면 또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어서 포장단위를 줄여서 판매해 주는 세심함이 이렇게 따라오면 소비자 입장에선 그저 고맙게 적은 부담으로 마실 수 있게 된다.

게이카 노 키힌 니 미치타 카오리 가 이쿠에 니 모 히로가리마스. 스미다 카오리 토 우마미 노 아루 아마이 아지와이 오 타노시메루 타이완 우롱차.
계화의 기품이 가득한 향기가 여러 겹으로 넓게 퍼집니다. 맑은 향기와 감칠맛 나는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대만 우롱차입니다.

홈페이지의 정보를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차는 메이산향이라고 아리산 근처 우롱에 계화 역시 근방의 밍젠향에서 난 계화를 블랜딩 했다고 하는데 대만 사이트들에 보면 이 동네에서 나오는 계화우롱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다. 아마도 저런 곳과 계약을 맺고 납품을 받는 듯. 베이스는 그냥 우롱은 아니고 금훤을 사용했다. 금훤은 흔히 밀키우롱이라고도 하는데 우려내면 우유향이 뽀얗게 나면서 고급스러운 단맛이 도는데 차의 맛과 깊이는 그대로 유지가 되는, 우유향을 가향으로 입힌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을 보여주는 차이다. 아까 이야기한 메이산(매산)이 금훤 산지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차품이 얼마나 좋을지 기대가 된다.

계화포유

봉투를 개봉하면 계화 특유의 시원달달한 향이 먼저 화악 올라오고 그 뒤로 아주 약간의 청향과 함께 우유향이 역시 달달하게 뿜어져 나온다. 조향 된 어떤 공산품에서 느끼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편안한 향이 느껴진다. 금훤 같은 차들은 그 달달한 향만으로도 이렇게나 사람을 릴랙스 시킨다. 건엽을 덜어보니 계화는 별로 보이지 않고 우롱차들만 보인다. 포유 된 우롱차에 비해 계화 꽃잎은 워낙 작아서 덜어내기 전에 잘 흔들어서 바닥에 가라앉은 계화를 좀 함께 덜어내야 하는데 다하에 담으니 벌써 계화들이 바닥에 숨어버린 것 같다. 아무리 사진을 다시 찍어도 잘 안 찍혀서 보여주는 건 포기. 암튼 계화 많이 들었습니다.

밤양갱 다식이 사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려준다

넉넉하게 3g에 60ml의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30초 이상 우려냈다. 보통은 차를 조금 더 넣고 30초 안쪽으로 우려 주긴 하는데 맛은 비슷하다. 비율이나 온도, 시간등에 관용성이 좋은 편이라 사실 아무렇게나 우려도 맛있긴 하다. 금훤베이스답게 뽀얗게 달달한 향이 피어난다. 로얄밀크티까진 아니고 우유를 한 꼬집 떨군듯한 은은한 유향에 달달한 금목서향도 함께 얹어진다. 본디 들큰한 맛과 향이 있는 계화인데 거기에 금훤의 유향이 섞여 한층 더 럭셔리한 향으로 느껴진다. 맛은 생각보다 청향이 살아있는 편으로 밀키함과 단맛과 청향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안정적으로 벨런스를 잡는 느낌이다. 금훤 자체로 즐기기엔 어딘가 살짝 임팩트가 부족한 느낌인데 여기에 금목서가 블렌딩 되니 아주 좋은 벨런스로 느껴진다. 회감이 아니라 그냥 단맛 자체가 은은하면서 길게 입안에서 유지가 되어 자꾸만 생각이 나는 차다. 대만차의 매력이란.

계화 많이 들었는데 사진을 영 못찍겠다

사진 보면 알겠지만 지난가을부터 정말 아껴 아껴 마시다가 이제야 시음기를 작성하는 차이다. 생각해 보면 작년엔 늦겨울부터 시작해서 계절을 한 바퀴 돌아 연말까지 우롱차를 참 많이 마신 한 해였다. 묘차의 계화우롱도 작년에 마셨던 차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이쪽이 금훤을 사용해서 그런지 훨씬 달달하고 흔히 생각하는 금목서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따지자면 묘차 쪽은 아이스티에 잘 어울리는 시원함이 있었다면 루피시아는 달달하고 따뜻 포근한 느낌. 그래서인지 마시면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약발이 좋은 차로 올해엔 대만 직구로 좀 대량구매를 해놔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작년, 올해, 내년이라는 표현을 고쳐 써야 할 정도로 오래 들고 있었던 시음기인데 연말에 마무리를 거의 했다가 한참을 홀드 한 뒤에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 애경그룹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시국 이슈로 인해 최종 마무리에 많이 애를 먹었다. 희생자분들을 애도하며 유가족분들에게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에 안정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나에게 안정을 주었던 대만계화우롱,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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