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263. 스위트 오렌지
루피시아에서 나오는 과일주스 느낌의 가향차로 핫도 아이스도 권장되는 단짝 친구가 있는데 하나가 허니 레모네이드,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스위트 오렌지이다. 솔직히 허니 레모네이드를 장바구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스위트 오렌지가 들어있었다. 받고 나서 든 생각은 어차피 이렇게 될 거 헷갈리지 말고 그냥 둘 다 시켜서 비교해 볼걸 하는 생각. 아무튼 가을에 문득 좀 덥다고 느껴지거나 문득 좀 쌀쌀하다고 느껴지면 마셔야지 하고 담은 것 같긴 하다. 시음기가 조금 늦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먹었다. 올 가을은 중간중간 더운 날이 어찌나 많던지. 50g 봉입으로 680엔이고 상미기한이 제조 1년이다. 아마도 시트러스 때문이리라.
그냥 오렌지도 아니고 스위트 오렌지. 과육이 잔뜩 들어가서 알알이 입에서 돌아다니다가 팡팡 터지는 오렌지 주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완전 착즙으로 깔끔하게 걸러낸 오렌지 주스도 떠오르고 어떤 느낌일지 감이 잘 오지를 않는다.
후레슈 데 아마이 오렌지 가 카오루 니루기리 코-차. 사와야카나 아지와이 와, 아이스티 니 모 오스스메.
신선하고 달콤한 오렌지 향이 나는 닐기리 홍차. 상쾌한 맛은 아이스티로도 추천합니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더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감귤과 궁합이 좋은 닐기리 홍차를 사용한, 오렌지의 신선 한 향을 즐길 수 있는 플레이버드 티입니다. 여름에는 바삭 한 아이스티에, 겨울에는 핫에서는 꿀을 넣어도 맛있게 드 실 수 있습니다. 상큼한 풍미와 깔끔한 뒷맛은, 연령 불문하고 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신선하고 달콤한 향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갓 짜낸 생과일주스 느낌이려나, 바삭한 아이스티와 꿀을 넣은 향긋한 핫티라니 너무 기대되는 차이다. 게다가 루피시아에서 연령 불문하고 추천이라고 하면 올타임훼이보릿 피콜로라던지 하는 쟁쟁한 차들이 생각나서 기대치는 더 올라가고 만다.
봉투를 열자 약간의 휘발성 가향과 함께 오렌지사탕 같은 향이 진득하다. 가루로 되어있어서 타먹는 오렌지 주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딱 그 느낌이다. 약간의 시큼한 산미가 이것이 사탕이나 주스 같은 당위주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건엽을 덜어내자 귀여운 색의 오렌지필이 과육느낌으로 섞여있는데 아마도 설탕에 살짝 절여서 겉면에 결정들이 코팅되어 있는 것 같다. 오렌지필이 들어있는 양으로 보아서나 가향느낌이 강했던 것 등으로 보아 꽤나 진한 가향이 들어갔겠거니 싶다. 닐기리 베이스라고 했는데 뭔가 그리운 느낌의 블렌딩이다.
6g의 찻잎을 300ml, 100도씨의 물에서 2.5분 우려낸다. 쌉쌀한 향과 함께 인공 오렌지향이 물씬하다. 오렌지필 인퓨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진한 오렌지껍질의 뉘앙스가 있다. 한 모금 마셔보니 역시 오렌지 과육의 느낌보다는 오렌지필의 향이 훨씬 강하고 닐기리도 꽤나 거친 느낌이다. 게다가 앵설 한두개를 녹여낸 듯한 달달한 맛은 꽤나 뉴트로한 느낌이다. 절여진 뭉근한 마말레이드 느낌도 아니고 시트러스향 자체를 강조하는 느낌도 아닌 오렌지필 자체로 승부를 보는 느낌인데 이렇게 직설적인 오렌지필은 꽤나 옛날에 유행했던 스타일 아닌가 싶으면서도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따뜻하게 마실 때는 꿀을 타서 마셔보라는 설명이 있었어서 꿀도 넣어보았으나 꿀의 종류도 워낙에 다양하기 때문에 어울리는 꿀일 찾아서 넣어야지 아무 꿀이나 다 잘 받아주진 않는 것 같다. 우선 오렌지나 홍차의 향이 확 죽어버리는 데다가 이미 약간의 단맛이 있는데 이도저도 아니게 달아져서 어느 농도에 맞춰야 할지 감이 잘 오질 않는다. 향 자체가 서로를 죽이는 느낌이라 더 넣어볼 것도 없이 꿀은 그 이후론 패스.
아이스티로 마시려는 목적이 컸기 때문에 냉침으로도 급랭으로도 시도해 보았는데 우선 냉침에서는 부드럽고 달달한 오렌지향이 좋았다. 아마도 대중이 좋아하는 맛은 이것이겠다 싶은 딱 그 맛이었다. 맛도 향도 달달하고 은은하지만 풍부한 홍차가 느껴진다. 거친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대부분 장점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오렌지필의 씁쓸한 향에서 옛 향수를 진하게 느낀 나에겐 조금 아쉬운 부분. 그래서 급랭으로 아이스티를 만들어보면 충격적으로 크림다운 현상이 매우 잘 일어나는데 뭔가 나쁜 짓을 하는 기분마저 든다. 크림다운 비주얼 만큼이나 맛도 한결 까끌까끌 거칠어진다. 잔뜩 날이 선 수렴성에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지는 오렌지필에서 오는 물질감까지 옛날 오렌지필에 살짝 찌든듯한 그 홍차의 맛이다. 특이취향일 수도 있겠는데 내 선택은 이쪽. 약간의 기름진 음식 뒤에 디저트로 마시면 딱 어울리는 맛이다.
쌉쌀한 오렌지향이 개인적으로는 옛날에 많이 마셨던 맛이라 이것도 좀 옛날 가향의 느낌이 드는데 최근 인기 있는 가향들과는 방향성이 많이 다르다고 느껴지기도 해서 더 그런 인상이 강하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이쪽으로는 포트메이슨이 좀 더 인기가 있지 않을까? 달달한 맛과 까칠한 수렴성, 여러가지로 노스텔지어인 스위트 오렌지인데 의외로 발매는 나름 최근에 했던 것 같다. 최근 루피시아가 리뉴얼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작년 올해 폐번도 꽤 많이 되었어서 이 차가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불안감 어린 바람도 생긴다. 이런저런 즐거움이 있었던 스위트 오렌지,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