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차노하. 가케가와차
올봄에 나고야 이온몰에서 마트녹차 신차(햇차)편 구경을 한참 즐기고 있을 때 괘천차라는 이름을 가진, 보기에도 패키지 디자인에 신경을 좀 쓴 차가 보이길래 이게 뭐야 싶어서 집어든 차가 있었다. 일본어도 한자도 많이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레이와 2년도에 천황어쩌구 상을 받았다고 되어있는 스페셜해 보이는 차. 냇가 옆에서 난 차려니 싶어서 일단 집어왔는데 가케가와라는 지명이었을 줄이야. 아무튼 햇차 중에 꽤 많은 차들이 시즈오카현 출신이던데 지난번에 시음기를 적었던 시즈오카 햇차 티백도 그렇고 가케가와차도 결국은 시즈오카 햇차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연말에 마저 마시면서 적는 시음기니까 햇차라고 하기엔 좀 뭐 한 감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멋있어 보이는 마트차 100g에 단돈 861엔.
시즈오카현이라고 하면 후지산을 북쪽에 두고 펼쳐진 논밭이 생각나곤 하는데 아마도 시즈오카산 먹거리, 주로 찻잎을 구입할 때 포장지에 그려진 이미지를 자주 보면서 생긴 선입견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시즈오카에서도 가케가와 지역은 하마마쓰의 동쪽, 그러니까 시즈오카시와 하마마쓰시의 중간 어디에 있는 동네인데 외국인 입장에선 정말 들어보기 어려운 동네가 아닌가 싶다. 봉투 앞에는 레이와 2년도 천황배 수상 다원이라는 홍보문구가 있는데 2020년 수상이란 이야기이니 조금 지난 이야기이긴 하다. 엄선된 찻잎의 부드러운 맛. 뒷면엔 맑고 고운 연두색의 수색이 특징이라고 적혀있는 듯. 그런데 이미지 사진에서부터 수색이 그리 맑지가 않다. 보통의 일본 센차는 미분이 많아 저렇게 뿌연 구름이 생기기 마련인데 언제쯤 적응이 되려는지. 근데 또 고오오급 센차일수록 미분도 적고 탕도 맑게 나와서 적응의 문제인가 늘 고민하곤 한다.
봉투를 개봉하자 신선한 녹차의 향이 난다. 의외로 포근한 향이어서 마음이 살짝 차분해진다. 모르고 마셨지만 시즈오카 신차 티백을 개봉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에 비해 확실히 진한 향이다. 증제차 특유의 짙은 향이 퀄리티 있게 다가온다. 건엽을 살펴보니 의외로 균일한 침모양보단 좀 부스러진 잎들이 많이 보인다. 역시 마트차의 한계인가. 유통의 문제인제 제조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부서진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고. 일단은 맛만 좋으면 그만인데 이런 것들이 아무래도 맛에 영향을 끼치니까 신경은 좀 쓰인다. 원래 그러려니 하고 마셔본다.
한잔 분량의 다관을 워밍해둔 뒤 5g의 찻잎을 넣어준다. 그윽한 녹차의 향을 잠시 즐겨준 뒤 70도 가까이 식은 물을 120ml쯤 부어주었다. 조심스럽게 1분. 따라내고 보니 역시나 뿌연 구름. 센차 특유의 육수스러운 진한 맛이 날까 싶어서 조심스레 향을 맡아본다. 소위 말하는 저온미역국 스타일은 아니다. 뒤에 투차량을 늘려 진한 액기스 스타일로 우려도 보았으나 잘 어울리진 않았다. 조금 더 편안하게 맑은 차로 마시는 편이 어울렸다.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티백으로 만들어서 마시면 그나마 깔끔. 미묘한 지점은 미끌한 부분 없이 적당한 우마미와 향이 잘 살아있어서 필터링만 잘하면 탕도 깨끗 향도 깨끗 상당히 괜찮은 차가 된다는 점이다. 겨울에 우연히 사 왔던 티백만큼 맛있는걸.
양이 충분하니 냉침으로도 마셔보았다. 15g, 450ml 냉침 2시간. 여전히 미분은 많지만 쓰거나 떫은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느낌이었다. 냉침도 괜찮지만 굳이. 매력으로 따지자면 역시 따뜻한 쪽인 것 같다.
끝으로 갈수록 다엽이 부스러기만 남아서 20g 정도 남은 것을 한번 채반에 싹 털어주어 가루는 버리고 마셨는데 이렇게 걸러낸 잎을 다시백에 넣어서 우리니 맛이 가장 깔끔했다. 순하고 부드러워서 대 만족. 내포성까진 바라기가 어려웠고 두 번 마시는 게 가장 좋았다. 세 번까지도 뭐 그럭저럭이지만. 이렇게 별도의 품을 들여야 하는 것이 영 번거로운데 마트산 100g 8백엔대 센차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놀라운 퀄리티인 건 사실이다. 마트차라 이렇네 저렇네 앞에서 이야기했어도 역시나 한국 이마트, 롯데마트 등에선 절대 불가능한 퀄리티라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젠 겨울이 시작되었는데 남은 가케가와차를 마시고 있으니 봄날의 녹차 맛이 그대로이다. 추운 날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포근해지는 그 시기가 어쩐지 쓸쓸해지는 겨울과 작별하는 시기인데 봄의 녹차는 그런 시기에 내 맘을 위로해 주곤 하는 맛이다. 올해 느낀 바로는 시즈오카 녹차가 화려하진 않고 어찌보면 무난무난한 그런 녹차이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시나브로 곁에 와있는 봄기운처럼 편안한 기운이 있다. 이제 막 만나는 겨울을 떠나보낼 때의 마음으로 맞이하게 하는 그야말로 일기일회의 녹차였다. 마지막까지 다 털어마시고 가케가와차,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