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엔, 그린티 타카오. 미나미야마시로촌 우지녹차
다카마쓰를 일본의 소도시라고 소개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너무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으로 잠시 바람 쐬러 다녀오고 싶어서 10월이었나 휑하니 다녀왔다. 지금쯤이면 더위는커녕 슬슬 서늘해질 시기겠다 싶을 때 갔는데도 긴바지가 힘들어서 반바지를 입어야 했던 가을더위. 밤양갱이니 단풍모양의 물양갱이니 밤맛 간식들도 한가득 사 오고 가는 곳마다 루피시아가 있어서 한 번씩 들러본 게 여섯 군데 매장을 갔던가. 마트며 칼디며 아무튼 장 보러 다녀온 수준이었다. 그중에서 오늘은 다카마쓰의 이온몰에서 발견한 녹차를 마셔본다. 사실 마트에 구비된 녹차는 이오텐같은 대기업 제품등이 어딜 가나 비슷하게 깔려있는데 그런 건 어차피 페트병으로 매일 마시고 다니니 크게 관심이 가질 않고 처음 보는 상품들 위주로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특히나 무슨무슨 한정이라고 써있으면 더욱 그렇다. 오늘도 그렇게.. 몇 안 되는 알아먹는 한자인 한정, 우지녹차에 눈이 팔려 집어오게 된 차인데 확실히 정신이 팔려있었는지 상미기한을 제대로 못 봤다. 11월 30일까지. 유독 상미가 짧다. 보통은 봄에 제조해서 1년쯤은 주지 않나. 이걸 최근에야 알고 허겁지겁 마셨는데 솔직히 11월 30일에 마신 것과 12월 1일에 마신 맛이 전혀 다르지 않아서 좀 실망했달까. 그런 헛소리 남겨보면서.. 70g, 756엔의 마트녹차, 스타트
교토부 남동쪽에 있는 미나미야마시로촌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나라시에 가까운 교토부의 유일한 촌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자세한 지리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우지차 산지 중 하나라는 것. 부드러운 맛과 깔끔한 풍미의 차라고 한다. 특히 지역의 농업조합법인인 ‘그린티 타카오’에서 재배한 생산자 한정 녹차라고 하니 약간은 다원차 느낌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가격이 두 배쯤 되어도 말이 될 것 같은데 이 가격에 다원차라니 엄청난 메리트란 생각이 든다. 품질이 어떨지는 어디 한번 개봉을 해봐야 알 일이지만.
봉투를 살금살금 개봉해 보았다. 상미기한이 임박한지라 개봉하자마자 훅 죽어버린다거나 할까 봐. 다행히 진한 녹차의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 아닌 게 아니라 색으로 치자면 일반적인 센차의 연두빛 향이 아닌 짙은 녹색의 향이 난다. 합격. 건엽을 덜어내 본다. 때깔 좀 보소. 짙은 녹색의 침형으로 말린 녹차가 빤질빤질 윤기가 돈다. 기름칠을 한 듯 빤질하고 그에 비례하듯 꼬소한 녹차향이 솔솔 난다. 최근에 알았지만 우지 쪽 계열의 녹차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증청을 좀 덜 하는 편이고 그래서 차의 떫은맛이 조금 더 남는 편이지만 우마미가 강하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차들은 대부분 후카무시라고 증청을 세게 해서 빠르고 간편하게 우러나면서 단맛이 더 살아있는 쉽고 편한 스타일의 차들이 나온다고 한다. 후카무시는 작년에 알게 되었는데 이게 지역에 따라 제다 스타일이 많이 갈린다는 건 이번에 또 처음 알았다. 잠시 후 더 이야기하겠지만 이 차와 며칠 전 올린 가케가와차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후카무시센차에 속하는 가케가와차의 건엽과 우지녹차의 건엽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걸 보면 말이다.
70~80도의 물로 다구를 예열한 뒤에 찻잎을 붓고 그 물을 넣어주라고 되어있는 걸로 봐선 대략 60도 정도에 온도를 맞추면 될 것 같다. 위아래 10도씩 해봤는데 그리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으니 너무 뜨거운 물로 삶아내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비율은 1:20으로 5g의 찻잎을 100ml의 물로 약 1분 우려내었다. 미분도 거의 없는 깔끔한 탕색. 지난번 가케가와차의 경우 후카무시센차라 거름망을 살살 긁어가면서 거르지 않으면 찻물이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이건 물 빠짐이 망설임이 없다. 마시면서도 무슨 차이 일까 했는데 제다법이 달랐다니. 아무튼 내가 더 선호하는 맑은 센차가 우려 졌다. 살짝 저온미역국 느낌의 진한 육수향이 느껴진다. 한 모금 마셔보니 몸서리쳐지는 짜고 씁쓸한 육수가 아닌 살짝 진한 우마미와 아주 연한 고삽미가 느껴지는 진한 센차의 맛이다. 육수도 녹즙도 아닌 부드러운 녹차에서 깊어질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느낌이다. 교쿠로처럼 미끈한 느낌은 당연히 없었고 지난번 시즈오카보다 우마미가 확 강조되면서 고삽미만 살짝 더 추가된 느낌이다. 좀 놀라운 건 부드러운 차맛과 괜찮은 우마미에 은은한 단맛까지 감도는 풍미였는데 아무래도 봉투에 적혀있던 수식어들이 그저 홍보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격에 비해 품질이 매우 뛰어나군요.
큼직한 엽저들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다 개운해지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우지차만 사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 일본녹차 싫어하나 봐로 시작해서 나는 센차를 싫어하나 봐, 아니 어떤 센차는 좋은데? 까지 너무 많은 혼란을 겪었다. 정말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미분이 많은 커피도 싫어하고 미분이 많은 센차도 싫어한다. 그뿐이었다. 미분미분미분. 이상하다, 학생 때 미적분 잘만 했던 것 같은데. 노오랗고 투명한 수색에 잡미 없이 깔끔한 맛과 향. 한국녹차의 고상한 멋도 좋긴 하지만 일본센차에서 느껴지는 편한 맛도 나쁘지 않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맛으로 태평후괴를 봄마다 구비하는 차친구들도 늘어나는 것 같다. 여전히 불편한 일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깔끔한 퀄리티의 차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일본의 마트녹차를 마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번엔 더더군다나 지역의 차농들이 만든 조합에서 너무 좋은 가격에 너무 좋은 퀄리티로 내놓은 차를 마시다 보니 한층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언제까지고 말도 안 되는 세금장벽으로만 버틸 수 있는 시장이 아닌 것이다. 미나미야마시로 차농들의 깔끔한 솜씨, 우지녹차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