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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하츠코이의 승리다

루피시아 8515. 하츠코이

by 미듐레어 Jul 23. 2025

루피시아의 전 메뉴를 모두 마셔보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일일까. 새로 발매되는 레귤러도 종종 있는 데다가 각종 한정품목과 해마다 새로운 차품이 나오는 햇차 혹은 빈티지까지 포함한다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물론 루피시아의 모든 차를 다 마셔보고 시음기를 써보겠단 건 아니지만 한정품목이 워낙 많아 기회가 있을 때 사는 게 그나마 요령이라면 요령인지라 최근엔 종종 다녀오는 일본여행과 그랑마르쉐등을 통해 잔뜩 쌓아둔 루피시아만 주구장창 시음기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차를 안 마시고 있는 건 아닌데 시음기까지 이어지지 않다 보니 이곳에선 언급할 기회가 잘 없네. 암튼 그렇게 바쁜 일정 가운데 마셔본 루피시아를 또 마시는 건 진도에 방해만 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앞서 말한 햇차의 경우엔 작년과 차이가 또 있고 레귤러라고 해도 미묘하게 다른 지점이 있기도 해서 가끔은 그런 점들을 남겨두고 싶어 고민 끝에 따로 메거진을 꾸리게 된 것. 무엇보다도 오늘 같은 경우는 아직 영점 조절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했던 시음기라 다시 작성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던 하츠코이인지라 언젠가는 이런 기회가 또 필요했었다. 지난번 나츠코이 구매와 같은 시기에 구매했던 것으로 한정일러스트캔 50g으로 1210엔이고 상미기한은 여전히 반년이다.

귀여운 일러스트지만 호불호는 좀 있게 생겼다.

일러스트에 녹색 레몬도 있어서 덜 익은 레몬을 표현한 건지 나 모르는 사이에 라임이 들어가게 리뉴얼된 건지 의아했는데 라벨지의 설명을 읽어보니 그린레몬인 듯. 덜 익은 레몬이라곤 했지만 못 먹을 걸 넣지는 않았을 테고 청사과처럼 노랗게 익기 전의 레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뭔가 라벨의 설명이 바뀐듯하네.

구리인레모은노 카오리토 레모은구라스오 료쿠차니 부렌도시타 나츠겐테이차。
그린레몬향과 레몬그라스를 녹차에 블렌딩 한 여름 한정차。

바뀐 건 아니고 예전에 쓴 시음기에서 굉장히 잘못 받아 적었다. 이젠 GPT도 나도 조금 더 똑똑해져서 일본어를 조금은 더 잘 읽게 된 듯.

두툼

봉투를 열어보면 어김없이 강한 레몬향이 느껴진다. 그래도 나츠코이의 레몬향보단 살짝 약한듯하면서 조금은 더 달달한 과일 주스 느낌의 향이다. 건엽을 덜어내 보면 여전히 풍성한 레몬그라스와 레몬필 토핑이 보인다. 녹차가 평소보다 잎 두께가 두툼해 보이고 윤기가 도는 게 꽤나 맛있어 보인다. 짤막하게 스포일러를 하나 미리 풀자면 올해 하츠코이는 녹차가 너무 맛있다.

칼디에서 사온 레몬 푸팅인데 꺼내다가. 좀 뭉게졌다

이제 와서 새삼 하츠코이를 따뜻하게 마실 이유는 없으니 곧장 냉침을 해본다. 냉침의 경우 특별히 달라진 감상은 없고 5g, 400ml의 레시피로 냉장고에서 여섯 시간 이상이면 충분히 우러난다. 루피시아의 공식 레시피로는 5g, 500ml로 3~5시간 냉장고에서 우려내는 게 정석이긴 한데 몬가.. 그냥 몬가.... 더 진하게 먹고 싶은 기분. 그냥 기분이라고 하는 이유는 실제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거 조금 더 넣고 조금 더 우린다고 확실히 진해지거나 하지는 않더라고. 냉침 시에는 녹차베이스가 연하고 레몬그라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동일했다. 레몬가향보다 레몬그라스가 먼저 느껴진다는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 가향과 레몬그라스 그 둘이 구분이 될 정도로 차이가 느껴진다.

진짜 재미있는 건 급랭인데 올해의 하츠코이는 물온도를 좀 올리는 걸 추천한다. 95도 이상의 물을 사용해서 6g의 차를 150ml에 1.5분 우려내고 얼음 가득한 컵에 걸러낸다. 원래부터 녹차베이스가 꽤괜인 루피시아이긴 한데 올해는 첫 모금을 딱 마실 때부터 우유향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녹차향이 구수하게 곡물이나 콩물 같은 맛과 텍스쳐를 가지면서 사악 넘어간다. 거기에 얹어지는 가벼운 레몬의 터치. 비강을 지나가는 느낌이 전혀 없는데도 콧구멍에서 다시 재생되는 향이다. 올해의 하츠코이는 정말 최고네. 보통은 나츠코이파였던 나지만 올해만큼은 하츠코이의 승리다.

녹차 실한거 보소

하츠코이 나츠코이들이 워낙 상미기한도 짧고 봉투를 열면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는 차라서 도저히 아껴마실 수 없는 차인데 그렇다고 여러 봉투를 사서 이것만 마시자니 밀려있는 차들이 너무 많기도 하다. 이렇게 좋은 차품을 나만 알고 있을 순 없고 이번 주말부터 열리는 온라인 그랑마르쉐에서 할인품목에 들어갈지 어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때를 노려서 많이들 드셔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이렇게 구매 추천까지 언급하는 건 또 처음인 것 같은데 여름은 지나가고 하츠코이는 곧 마감이 될 것 같거든요. 올해의 하츠코이는 다들 좀 츄라이츄라이 해봤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이래서 새로운 차를 마셔보는 진도가 빠르게 나가질 못한다니까. 분명히 내년에도 한 템포 쉬어가게 만들어줄 하츠코이, 끗.


지난 시음기: https://brunch.co.kr/@mediumrar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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