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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Sep 06. 2023

복숭아빛이 깊은 투명에 가까운 고급 우롱차

루피시아 8231. 백도우롱 극품

루피시아 부동의 첫사랑 모모우롱(극품). 언제부터 극품이란 수식어가 더 붙은 건진 모르겠지만 모모우롱이라는 이름 자체가 벌써 완벽히 사랑스러운 울림이다. 뽀얀 백도 복숭아의 이미지에 맑은 우롱차가 더해지면 이건 뭐랄까 좀 오래됐지만 러브레터의 도서관 장면 같은 뽀얗고 눈부신 청량 청순 청춘 아니겠습니까. 잘 아는 맛이고 좀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보부상님께 일러스트 캔으로 구입을 부탁드렸다. 50g 봉입이 1,200엔, 일러캔 30g은 1,180엔이다.

차판까지 올린 기본에 충실한 찻자리

대만 우롱차에 일본 백도 복숭아를 가향했다고 한다. 우롱차는 대만이 맛있지, 암암. 한때 동방미인에 미쳐있던 때가 떠오른다. 정말 옛날이다. 우롱차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셋팅을 좀 해본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개완도 꺼내고 공도배랑 잔도 꺼내서 셋팅해 본다. 아마도? 홍차보다는 아내가 편하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한잔 마셔보려고 한다. 차판은 몇 년 전 아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것.

홀리프 1g은 계량이 쉽지 않다.

차칙이나 뭐 좀 차를 예쁘게 담을 그릇이 없어서 그냥 잔에다가 셋팅. 큼직하게 쪼글쪼글 말라있는 우롱차가 들어있고 로즈레드가 같이 들어있다. 백도와 비슷한 색감을 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전에도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마지막 마신 게 2년이 안된 거 같은데. 물도 열심히 식혀서 85도쯤에서 끓는 물로 데워둔 텀블러에 담아주었다. 준비 완료.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내가 홍차를 마시는 모습이 정말 복잡하게 이것저것 많이 거쳐서 차를 마신다고 하는데 녹차 쪽으로 갈수록 훨씬 더 복잡해지는 데다 하도 많이 해서 적응이 되어있다 보니 홍차는 정말 간단하게 마시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고 보니 그냥 내가 고인물 같군.

개완 뚜껑을 보이고 싶어서 두 번 찍어본다.
개완에서 첫 탕과 삼 탕. 수색 변화가 거의 없다.

개완이 70~80ml이고 찻잎은 약 1g, 물온도는 80도를 조금 넘을 것 같다. 물을 부어서 30초가량 우린 뒤 버려서 세차를 해주고 1.5분쯤 우려서 첫 탕을 마신다. 맑고 연하고 노란 수색이다. 백도 가향과 우롱차의 단맛이 잘 어울린다. 20~30초씩 늘려가며 재탕, 3탕을 거쳐도 여전히 수색이 유지된다. 우롱차의 맛이 단맛은 좀 빠지고 차 본연의 약간 무거운 맛이 올라오기 시작하지만 적당히 희석이 되어있고 여전히 유지되는 가향과 함께 가볍게 즐기기 좋은 맛이다. 5탕쯤 오니까 풀내가 많이 나면서 차를 보내줘야 할 때가 되었다.

사진에서 보기보다 잔이 깊어서 수색이 좀 더 짙어진 것. 개완 수색보다 약간 짙은 정도이다.

이번엔 티팟에 85~90도, 5g, 300ml 1.5분으로 우려 보았다. 수색이 확 진해지면서 우롱차보다는 가향이 더 짙어지는 느낌이었다. 30초씩 늘려가면서 재탕, 3탕까지 가보았는데 3탕은 밍밍하니 영 맛이 나질 않았다. 역시 모모우롱은 좀 더 느긋하게 즐기는 편이 좋은 것 같다. 홀리프에 가까운 잎차이지만 뜨겁게 삶아버리면 수렴성이 순식간에 올라온다. 모모우롱은 연하게 마셔도 향이나 풍미가 좋기 때문에 너무 양이나 온도를 올리지 않는 걸 추천한다.

엽저를 보면 왜 로즈 넣어줬는지 납득이 된다. 백도스러운 색이 난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아이스티로 추천하고 있는데 급랭이든 냉침이든 무난하게 잘 어울릴 맛과 향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아이스티로 마시려면 농도를 좀 덜 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심플한 맛과 향이 어느 농도에서고 무난하게 우러나기 때문에 역시나 아이스티로 추천할만하다. 회사에서도 기분 내킬 땐 대충 정수기 뜨거운 물로 컵 1/3쯤 되게 1.3분쯤 우린 다음에 얼음 솨아아아 부어주면 깔끔한 모모우롱 아이스 완성이다.


모모우롱의 인기 비결은 깔끔한 가향의 완성도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건 루피시아가 가장 잘하는 분야로 이전 시음기에도 루피시아의 깔끔한 가향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 했을 것이다. 반대로 지저분한 가향은 어려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 가향 오일이 차에 깨끗하게 붙질 않아서 각종 냄새나 심한 경우 쩐내가 나면서 기름이 둥둥 뜨기까지 한다. 모모우롱의 투명하고도 향긋한 수색을 보고 있으면 그 인기의 비결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는 것이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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