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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Sep 07. 2023

평냉 맛집 장인도 인정할 탕비실의 고인물이 바로 나

루피시아 5557. 백도 자스민

루피시아에서 유명한 차로 모모우롱이 있어 지난번 시음기를 올렸는데 그것과 비슷한 형제 같은 차가 있으니 바로 모모자스민이다. 원래는 가루이자와 지점 한정이었던 상품으로 가루이자와 지점이 폐점하면서 일반 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꽤 옛날인 것 같은데 찾고 찾아보니 12년도에 올라온 한정판 시절 사진이 있다. 그땐 디자인 틴 케이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구하기 어려울 듯. 아무래도 모모우롱을 떠올리며 주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상품번호가 5로 시작하는 홍차베이스의 가향차라니, 근데 자스민이라니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어 보부상님께 주문을 부탁드려 보았다. 50g 봉입에 무려 1700엔.

물 온도가 죄 열탕이라고만 되어있어서 읽다가 열탕터짐
다즐링 봄따기 홍차와 자스민차의 상쾌한 블랜딩에 달콤하고 우아한 자두향을 더했습니다.

백도 자스민, 하쿠토 자스민, 모모 자스민 뭘로 부를까 싶었는데 모모자스민으로 결정했다. 그쪽이 좀 더 귀여우니까.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를 사용했다고 한다. 어쩐지 비싸더라니. 그래서인지 침출 시간도 1.5~2분이다. 여리여리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상미기한이 1년으로 다즐링 퍼스트가 낙엽이 되기 전에 개봉 후 빨리 마시는 것이 좋겠다.

얼핏보면 녹차베이스 같겠지만 자세히 보면 녹차와는 조금 다르다.

푸릇푸릇한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와 어딘가에 섞인듯한 중국 녹차, 그리고 자스민 꽃이 섞여있다. 봉지를 뜯자마자 루피시아의 백도 가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뭐 어쩔 수 없겠지만 건엽에서 백도 가향 외의 다른 향을 맡지 못하는 건 좀 아쉽다. 이런 걸로 아쉬워하면 다즐링 퍼스트에 가향을 하는 대범한 짓은 못한다고. 작은 봉우리째 들어있는 자스민이 좀 예쁘긴 하다.

물론 첫잔은 원샷이겠죠?

6g, 300ml, 1.5분. 물은 한 김 식혀서 85도에서 우렸다. 재탕으로는 90도에서 2분 쪼꼼 안되게. 50g당 1000엔이 넘어가는 애들은 어쩐지 한번 우리고 버리기엔 손이 덜덜 떨린다. 첫 모금은 그냥 뜨거웠다. 옛날에는 고양이 혀라고 그랬었는데 요즘도 그 말 쓰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식혀서 다시 한 모금. 의외로 가향이 많이 날아간다. 모모우롱을 생각하고 마시면 가향도 약하고 그 뒤에 와야 하는 우롱의 자리에 아주 연한 다즐링이 스치고 간다. 잔을 거듭하면서 차가 차츰 식어가고 마무리로 사악 느껴지는 수렴성. 녹차가 들었다고 하더니 이게 뭘까? 운남? 자스민은 정말 미약하게 거들뿐이다. 단맛도 적고 확실히 홍차의 맛인데 연하게 마시는 청차의 바이브가 느껴진달까.

마시기 딱 좋게 온도가 떨어진 재탕을 이어서 달린다. 비로소 홍차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면서 모모자스민의 지향점이 보인다. 모모우롱의 홍차버전. 이것은 취향에 따라 평이 갈릴 것이란 생각이 확 든다. 흔히 소엽종으로 만든 홍차의 맛과도 아주 다르면서 그렇다고 전형적인 홍차의 맛도 아니기 때문에 그야말로 취향에 따라 밍밍하거나 차분한 향으로 느끼거나 둘 중 하나로 갈리지 않을까. 마치 평양냉면처럼 평하기가 까다로운 친구라 하겠다.

자스민 카와이이이이이

모모우롱이 아이스티로 적합했던 것처럼 모모자스민 역시 아이스티로도 깔끔한 맛을 보이는데 어디까지나 제대로 만들었을 때만 그렇지 자칫 스윗 스팟을 벗어나면 이제 뭐지 싶은 맛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정말 평양냉면인 게 육수에 따라 너무 진해도 느끼하고 비린데 반대로 너무 연하면 풍미가 느껴지지 않아 맹탕이 되어버리는 딱 그런 상황. 온도, 찻잎양, 물의 양을 정말 잘 맞춰주면 다즐링의 풍미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백도가향, 그리고 저 멀리 자스민의 은은함이 청량하게 다가온다. 모모우롱에 비해 500엔이 더 비싼데 아무리 엔저라곤 하지만 차이가 꽤 나는 편이고 루피시아 전체적으로 봐도 모모자스민의 가격대가 꽤 높은 편이다. 아이스티에서의 취급은 모모우롱에 비해 더 까다로운데 가격은 확 올라가는 편이라 쉽사리 추천하긴 어렵겠다. 하지만 난 고인물이라 해냈음. 대략 3g, 100ml, 80도 조금 넘는 물에서 1.3분 우린 뒤에 얼음을 사아아아아아악 부었다. 자신 있으면 도전해 보시라.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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