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듐레어 Nov 15. 2023

홍차왕자와 You still my No.1

루피시아 5812. 츠키니사쿠

이번 루피시아 배대지 직구를 감행하게 한 주요 원인 제1편, 츠키니사쿠이다. 츠키니사쿠, 그러니까 달(츠키)에(니) 피다(사쿠)라는 뜻으로 영어 이름은 또 달빛 금목서라는 의미의 문라이트 오스만투스. 중국에는 달에 큰 금목서가 있다는 (토끼랑 계수나무 그거요) 전설이 있고 보름달이 필 때쯤 금목서도 만개하기 때문에 (보통 추석 다음 보름달) 금목서는 달의 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계화라는 이름이 붙은 수많은 블랜딩과 향이 바로 이 금목서. 딱 요맘때만 판매를 하는데 수량한정으로 1인당 20개씩만 판다. 그만큼 매년 품귀현상을 겪는 인기 블랜딩. 근데 이게 한정 일러스트 캔으로 남아있더란 말이지. 냅다 질러 40g 한정 일러 캔입에 1130엔. 상미기한은 의외로 넉넉하게 2년.

갈대가 밤하늘에 흔들리고 금목서 꽃잎이 달빛에 빛나는 2023 츠키니사쿠 한정 일러스트.
아데야카 나 킨목세이 노 하나비라오 코차 니 타뿌리 또 부랜도. 아마쿠 카구와시 카오리 또 노소 요인.
화려한 금목서 꽃잎을 홍차에 듬뿍 블렌딩 합니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향과 그 여운.

계화우롱이나 계화라떼 이런 거 너무 유명한데 츠키니사쿠는 계화홍차라고 한다. 설명은 뭐.. 별 다른 건 없고 평범하게 계화 블랜딩한 홍차이다.

노란 금목서가 듬뿍듬뿍

개봉하자마자 금목서 같긴 한데 아닌 거 같기도 한 묘한 향이 확 올라온다. 으음~? 응??? 이런 느낌이다. 순수 금목서 향이 아니고 차 향과 섞이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있는 금목서 향을 맡은 적이 있나 싶다. 나 또한 어디 핸드크림에서, 향수에서, 방향제에서, 스프레이 등등에서 맡아본 향들을 통한 귀납적 기억이 있을 뿐이다. 오리지날을 모른 채 이것이 정말 금목서향에 가깝다 어떻다 평가를 하는 것이 너무 우스운 것이다. 시뮬라르크로 점철된 거짓 시음기를 작성할 순 없어서 금목서를 찾아 나서려던 순간, 아차. 이미 개화시기가 다 지나버렸자나. 근데 츠키니사쿠의 향을 맡을수록 뭔가 자꾸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이라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쿠팡에서 금목서 실제 향과 가장 가깝다는 디퓨져를 구매했다. 빠른 로켓배송 감사.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급속도로 안정감을 되찾고 다시 향을 비교해 보자 겨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금목서와 홍차의 향인지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게 그만큼 향이 잘 섞여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인도와 베트남 홍차가 섞여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우려 보면 좀 큼직한 브로큰 잎과 좀 더 자잘한 잎이 들어있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자잘한 쪽의 비율이 높다. 계화가 듬뿍 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무게가 덜 나간다. 도저로 뜰 때 조금 더 떠야 무게가 맞을 듯.

노란꽃과 깔맞춤 해보고 싶었다

5g, 300ml, 100도 물에서 2.5분 우려내었다. 계화랑 깔맞춤으로 오랫만에 꺼내본 나의 가장 오래된 다구, 노리다케 찻잔. 수색은 평범하게 홍차색이다. 향이 정말 분위기가 끝내주는데, 물을 잔뜩 머금은 금목서향이랄까. 홍차와 향이 워낙 잘 섞여서 그런지 이런 홍차를 마셔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마셔봤을지도) 평소에 마시던 홍차의 향을 빼고 생각해 보면 또 금목서의 향이 (비록 시뮬라르크에 그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데 뜨거운 물에 차로 우려 져 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어서 어떤 수채화를 보는 것 같은 묘하고 아련한 기분이 든다. 금목서의 기운이 서려서 그런 걸까. 마시는 내내 어딘가 아련한 느낌. 수렴성은 그렇게 강하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홍차에 은은하고 아주 약간의 달달한 향과 엽저에서 주로 나는 비릿한 듯하면서 식물성 그 잡채인 향이 아주 멀리서 불어온 것 같은 옅은 금목서의 향과 함께 녹아든다. 그래서 아련한 느낌이 자꾸 드는데 이걸 우째 설명을 못하겠네. 재탕까지도 향이 크게 죽는 법이 없어서 수채화 같은 느낌은 계속된다.

엽저에서도 향이 듬뿍듬뿍

아련함과 함께 주로 떠오르는 것은 야마다 난페이 선생님의 홍차왕자. 이맘때면 학원제 에피소드 무렵인가. 이젠 내용도 가물가물한 그 만화가 자꾸만 떠오르고 귓가에는 보아의 넘버원이 자동재생 되는 것이다. 확실히 달의 기운이 가득하군. 달빛에 은스푼으로 홍차를 몇 번 저으면 홍차요정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은 우아하고 아련하고 향긋한 홍차였다. 어디선가 비슷한 걸 마셔본 것 같은 이상한 느낌까지 자꾸 무슨 전생한 사람마냥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마법 같은 멜랑콜리함과 노스텔지아를 느껴보고 싶다면 내년 10월 루피시아 직구를 잘 노려보자. 츠키니사쿠의 시음기, 끗.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