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698. 하네테류 ~Popping Dragon~
루피시아의 2024년도 용의 해 한정차인 하네테류, 일명 튀어용을 마셔보았다. 작년 연말에 간지차 나오자마자 구매해서 보부상님께 전달받은 차인데 이제서야 마셔보는 건 아니고 진즉에 다 마시고 시음기가 늦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우선은 시음기를 이어가 보자. 지난번 날아용이 날아오르는 용을 이미지 한 우롱차 베이스의 가향차였다면 이번 튀어용은 퐁퐁 튀어 오르는 용의 이미지로 홍차 베이스의 가향차이다. 녹차홍차 세트면 뭐다? 일단 사고 보는 거다, 그것도 세투세투로. 그렇게 구입하게 된 튀어용. 이제 구매사유를 지어내는 것도 슬슬 한계에 도달하는 것 같다. 솔직히 그냥 거기 신차가 있었기 때문에 산겁니다. 한정 일러 캔입이고 50g에 1350엔, 상미기한 2년이다. 2월 초에 이미 매진이었으니까 인기가 꽤 좋았던 것 같다.
동백꽃과 복숭아가 그려진 배경 위로 금박 용이 춤을 추는 일러스트의 캔이다. 역시나 선물용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신년의 복을 기원하는 느낌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나는 선물 받아도 못 알아보겠지만 중요한 건 선물 받았다는 마음 아니겠는가. 나에게 셀프 선물했다고 생각한다.
겡끼 니 하네루 류 오 오모와세루. 모모 야 라이치, 칸키츠 노 카오리 아후레루 코차. 타노시 이치 이넨 노 하지마리 오 요칸 사세마루.
활기찬 용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복숭아, 리치, 감귤 향이 가득한 홍차. 즐거운 일 년의 시작을 예감하게 한다.
설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아이스티 추천 라벨이 붙어있는 차로 조금은 달달하면서 플라워리한 베르가못을 상상하게 만드는 홍차.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즐거운 일 년의 시작을 예감하게 한다고 하니 언제나 즐거운 tvN과 함께 마셔봐야 하나. 훗.
봉지를 개봉해 보니 리치향이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 휘발성의 가향과 함께 향수 같은 리치의 화려한 향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 뒤로 약간의 시트러스와 복숭아의 달착지근한 향기가 뒤따른다. 건엽을 덜어내 보면 각종 꽃잎들이 화려한 것이 특징인데 장미, 메리골드와 사플라워등이 빨강 주황 노랑 핑크의 색감을 뽐내고 홍차잎마저 뭔가 꽃잎의 색이 물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달달한 향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설렘설렘한 이미지의 차인데 봄비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러니까 힘 뽝 주고 ‘신년기념!‘하는 기운은 좀 덜하다. 아무래도 해를 기념하는 간지차라는 상징성이 있다 보니 자꾸 그런 쪽을 기대하게 되는데 일단은 용의 기운을 느끼진 못하겠다. 하지만 맛있을 것 같아.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렸다. 우아한 로즈향이 차분하게 퍼져나간다. 리치향과도 비슷한 로즈인데 꽃절임과 같은 진한 향과 달큰함이 친숙하면서도 근사하다. 로즈포총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한 모금 마셔보면 리치향에서 로즈가 느껴진 건가 싶게 순위가 바뀌고 가향보다 차의 비중이 아주 크게 느껴지면서 물맛도 많이 난다. 클래식한 가향홍차의 포지션으로 어딘가 애프리콧 가향차로서의 익숙한 맛과 향이 떠오르는 홍차다. 마실수록 익숙함이 느껴지는데 어딘가 그리운 맛으로 자꾸만 옛스럽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리치, 살구, 약간은 황도스럽게 달달하면서 로즈에 가까운 리치향이 지배적인 가향이다. 순한 홍차는 꽤나 술술 넘어가는 편이라 순식간에 포트가 바닥나고 만다. 통통 튀는 느낌은 잘 모르겠다. 계속해서 이 점이 걸리네.
12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린 뒤 얼음 가득한 컵에 따라내어 급랭 아이스티를 만들어보았다. 아이스티에서도 크게 변화가 없는 맛과 향으로 안정적이라면 안정적이겠는데 조금은 밋밋한 인상이 되어버린다. 수렴성과 산미의 중간 어딘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향의 느낌이 있다. 여전히 티 베이스는 가벼우면서도 중심을 잘 잡아주긴 해서 가벼운 티푸드와 즐기기에 충분한 정도이다. 핫티에서는 어지간한 초코과자와 매칭해도 휘둘리는 느낌까진 없었지만 아이스티에서는 가벼운 생크림정도나 버터쿠키까지 내려와야 매칭이 좋았다. 아이스티로 차갑게 마셔도 크게 모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이스티 마크를 붙여둔 건가 싶은데 조금은 아쉽다.
통통 튀는 용의 기운을 느끼기엔 나름 섬세한 인상의 차였어서 심지어 티푸드조차도 가향을 해치치 않을 향이 적은 과자류를 골라야 했던 튀어용. 이제 와서 틴케이스를 다시 보니 온몸에 꽃무늬를 두른 용이었다. 뭔가 봄비에 어울릴 것만 같은 인상은 마시면서도 여전했는데 황도같이 달짝지근하면서 리치의 화려함이 살아있어서 개인적으론 어린 시절 봄에 자주 마시던 차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Puff the magic dragon이란 팝송도 떠오르면서 내 동심의 동굴 어딘가에 넣어두었던 친근한 그 용이 떠오르기도 한다. 혹은 인사이드아웃의 빙봉이라던지. 빙봉빙봉. 시음기는 여기서 끗.
2월에 바쁜 일이 많아 시음기를 거의 작성하질 못했다. 정확히는 쓰다 말았는데 마무리할 시간이 없었다. 신차를 뜯을 겨를도 없다시피 해서 다행히 더 밀린 시음기가 있진 않고 그냥 방학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계획보다 빨리 루피시아 시리즈를 잠시 멈추게 되었다. 두 번 정도 배대지를 돌리면 정기적으로 발매되는 한정들을 포함해서 루피시아의 1년 주기를 다 돌 수도 있었는데 봄-초여름 차들은 아무래도 1년을 미뤄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바로 끝나는 건 아니고 아직 대여섯 개 새로 생긴 루피시아가 있긴 해서 그걸 마시면 되는데 이렇게 적어두지 않으면 아무도 예정보다 시리즈가 일찍 끝난걸 알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적어둔다. 그러게, 끝난다 그러고 계속 나오는 것도 웃기는 일이긴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