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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Nov 16. 2020

안녕? 내 이름은 말이야

첫인사는 가볍게

  코로나 19의 상황이 완화되고 아이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등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첫 등교에 괜히 긴장되고 걱정이 되었다. '세 반의 아이들을 만나 잘 지낼 수 있을까', '돌봄 아이들만 왔을 때는 할 일이 명확했는데 전체 등교하면 어떨까'와 같은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은 2학년다웠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눈망울이 반짝였다. 반짝이는 눈 사이로 호기심이 가득했다. 코로나가 어찌 되었든 아이들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노는 일에 반가움이 가득해 보였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모습에 생동감이 가득했다. 한 반에 스무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한데 모여 쫑알쫑알 이야기하니, 드디어 교실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약 6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누구세요?"


  하루 만에 아이들의 이름과 성격의 특징을 알아채기란 너무 어려웠다. 기존에 알고 있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자신 있게 이름을 불렀다. 아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확실히 집중이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야, 선생님이 네 이름을 어떻게 알아?"라고 서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을 파악하고 집중시키기 쉽다. 또 돌봄 아이들을 중심으로 관계되어 있는 주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이들의 관계망을 이해하고, 교실이 한눈에 보인다.


  모든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서 1교시를 준비하려는데, 한 아이가 교실을 서성이다 나를 보더니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책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화장실 앞에 작게 꾸며 놓은 화단에 털썩 앉아있었다. 빠르게 달려가서 아이의 옆에 앉았다. 아이의 정보를 아는 것이 필요했다. 재빠르게 아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인하며 이 아이가 몇 학년 무슨 반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다행히 아이는 학생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이 아이는 2학년이 맞았다. 나는 아이의 옆에 앉아, 살갑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녕? 나는 9월부터 출근한 부담임 선생님이야. 00야, 반가워. 조금 있으면 수업이 시작될 텐데 교실에 같이 들어갈까?"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내 마음은 다급해져 갔다. "00야, 교실에 안 갈 거야?", "00야, 혹시 어디 아파?", "00야, 선생님 이야기 듣고 있어?" 나는 질문을 퍼부었다. 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는데 눈가의 표정 변화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퍼붓는 내 질문에 아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멈추고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야기가 시끄러워?"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담임 선생님께 톡을 보냈다. '선생님, 000 학생이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화장실 앞에 앉아 있어요.' 톡을 보낸 지 3분이 지나지 않을 때, 담임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담임 선생님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보였다. "선생님, 이 아이가 교실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학년 초부터 그랬는데, 제가 데리고 갈게요. 괜찮아요." 담임 선생님이 오시자 아이는 안심한 듯 보였다.


  그 아이는 1학년 때부터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고 전해 들었다. 입학한 뒤로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힘들어했고,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선생님들이 배려하는 중이라고 듣게 되었다. 그나마 2학년이 된 이후로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적응했다가,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져서 등교일이 멈춰지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교실 밖 복도에 작은 의자가 하나 놓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자리였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학교의 위험한 곳을 다니지 않았다. 복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동 수업을 할 때,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지 않고 교실에 남아 서성였다. 교실에 서성이는 아이를 모른척하기 어려웠다. 서성거리는 아이의 발걸음을 그냥 지켜보기 어려웠다.


  "00야, 선생님이 색종이로 공을 접어줄까?" 그제야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께 전해 듣기로 아이는 담임 선생님 외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열심히 색종이로 공을 접으며 또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00야, 선생님이 잘 접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이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을 채 물었다. 그런데 아이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반응이 나는 무척 반가웠다. 비록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그쳤다고 하더라도, 내겐 아이의 반응이 열 마디, 백 마디보다 값진 것이었다. 색종이로 접은 공을 내밀었다. 아이는 공을 위아래로 던지며 즐거워했다. 아이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내게 퍼졌다. 슬며시 교실 밖으로 나가자, 아이는 주섬주섬 가방을 꺼내어 색종이 공을 넣었다. 나의 관심과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만 같아 무척 기뻤다. 드디어 소통이 된 것 같아 너무 고마웠다.  나와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가볍게 서로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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