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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Nov 13. 2020

마음의 이중성

출근하고 나니 깨닫는 진실

  마음을 다잡고 출근한 지 이틀 만에 현타가 왔다. '당장 때려치워야지!'라는 마음이 불쑥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해서 마음을 쏟아냈다. "엄마, 나는 정말 이럴 줄은 몰랐어. 당장 때려치워야겠어!" 그뿐이 아니었다. 귀가해서 남편에게 감정을 토해냈다. "이게 말이 돼?"


  이틀 째 출근하는 아침은 첫날과 달랐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된 기분이었다. 더 이상 설레지도 않고, 앞이 캄캄했다. 첫날 경험했던 엉망인 교실과 난장판과도 같았던 아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출근한 지 이틀 만에 차갑게 식은 감정에 나조차도 당황했다. 그럼에도 출근은 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첫날에 물 한 잔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가방 안에 텀블러를 넣어두었다. 아이들이 줌 수업을 듣는 동안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책을 넣어두었다. '아이들이 수업 듣는 시간에 나는 책을 읽어야지'


  챙겨간 책을 틈틈이 읽었다. 그러다 아이들 와이파이 연결도 해주고, 충전기도 연결해주고, 줌 수업 대신 유튜브를 시청하는 아이들을 지도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은 몸은 컸지만 아직 한참은 아기 같은 면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혼자서 하고 싶은 마음과 안내와 지도가 필요한 태도가 공존해 있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아기 같은 태도를 가르쳐야 했다. 수업에 방해되는 줄 알면서 단지 '지루해서', '재미없어서', '관심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이 많았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거나, 연필로 책상이나 의자를 두드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음소거를 해제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일부러 큰 소리로 대답하기도 했다. 다양한 아이들 중 한 아이는 이어폰이 고장 나서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같은 이어폰을 챙겨 와서 "소리가 안 들려요!"라고 말하며, 급기야 이어폰을 빼고 수업을 듣기도 했다. 수업 중에 카메라를 끄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중구난방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 자체로 빛이 났다. 마스크 사이로 환하게 웃었고,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4교시가 되면 어떤 급식이 나올지 궁금해하고 기대했다. 아이들의 작은 움직임이 살아있는 생동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했다. 급식실에서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아이들은 앳된 얼굴로 반짝이고 있었다. 김치가 맵다고 징징거리는 모습조차 예뻐 보였다. 마음대로 하고 싶고, 투정 부리고 싶고, 말을 안 듣는 그 모습이 아이였다. 교복을 입고 감춰져 있던 아이의 민낯이었다. 아이들의 민낯을 바라보는 것이,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했다.


  돌봄 아이들이 하교한 뒤 교실을 청소했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의 교실은 첫날 마주했던 교실만큼 엉망진창이었다. 비질을 하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책상을 다시 정렬해 놓고 깨끗하게 치워둔 내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다고 안도할 때, 부장님에게 카톡이 왔다. '선생님, 각 교실마다 청소기 좀 돌려주세요.' 부장님의 호출에 단번에 달려가 교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교실을 청소기로 청소하는 것은 집에서 하는 것과 사뭇 달랐다. 집은 가구와 가전이 가지런히 한쪽에 정리되어 있는데, 교실은 책상만 20개 이상이 널려있다. 세 반의 책상 사이사이를 청소기로 헤집고 다니고 나니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생전 해보지 않은 노동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이런 청소나 하려고 취직한 줄 알아?!' 내 마음속에 억울하고 서러운 감정이 분노와 뒤섞였다.


  임용 시험조차 보지 않은 내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교만한 마음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나도 저들과 다르지 않다', '내가 더 좋은 학교를 졸업했을 거야'라는 비교 의식에서부터 '내가 더 나이가 많잖아!'라는 어처구니없는 마음까지 솟아올랐다. 이런 마음이 내 안에 퍼져 나왔지만, 사실 무임승차하고 싶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저들은 어린 나이부터 치열하게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해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그 자리를 은근슬쩍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엄연히 욕심이었는데도,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해버린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청소일'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누누이 말했으면서, 깨어있는 척 해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귀천이 없는데 청소를 하고 나서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취업한 줄 알아? 이럴 거면 청소부를 고용했어야지!'라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런 속마음을 들키고 나니 부끄러웠다. 마음이 새빨개졌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학교에 취업했다고, 나도 '선생님'이 되었다고 자랑했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아! 아이보다도 못한 이 마음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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