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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Dec 02. 2020

아이에게만 있는 감각

육감보다 뛰어난, 어른에게는 없는, 진심을 알아채는.

  "엄마, 나 오늘은 할머니랑 놀 거야." "난 혼자 놀래." "동생이랑만 놀 거야!"

하루도 빠짐없이 '난 엄마랑 놀 거야'를 외치는 아이가 한 번씩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오늘은 아이랑 진짜 잘 놀아줘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훨훨 내 곁을 떠나 다른 이에게 간다. 그런데 그런 날은 꼭 내가 백 번의 노력을 하는 날이다. 아이들은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만나다 보면 '어떻게 애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아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은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안다. 마치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말이다. 애완동물은 낯선 이들을 만나도 단번에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 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경계를 풀지 않고, 굳이 다가가 애교를 떨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을 예뻐하고 귀여워해 주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고 다가가 애교를 떤다. 몸을 비비고 갖은 아양을 떨며 사랑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본능과 감각은 아이들에게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한 번도 예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안아달라고 안기는 아이들을 피해 도망가기 일쑤였다. 내게 아이들은 두려움의 존재였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반드시 '중학생' 이상을 고집했더랬다. 내겐 10대의 아이들이 더 편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를 사랑하는 법'에 훈련이 되었다. 내 새끼를 키우면서 아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고, 육아에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겼을 무렵 다른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급기야 내 자식도 아닌데, 울고 있는 아기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아무리 다년간의 훈련을 통해 아이들이 예뻐 보인다고 하더라도, 늘 내가 먼저인 사람이었다. 나의 상태와 상황, 환경이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들이 다가와 놀자고 할 때마다 나의 우선순위는 그들이 아니었다. 오늘은 피곤해서, 할 일이 많아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해서, 집안일을 마무리해야 해서, 네가 어지른 장난감을 치워야 해서,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해야 해서, 등등 놀 수 없었다. 아이들이 내게 와서 재잘거리며 말을 걸 때, "무슨 말이야. 똑바로 말해."라고 말했다. 같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어지른 장난감부터 먼저 치워.", "엄마 이것만 마무리하면 같이 놀자."라고 말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이들은 내가 놀자고 이야기할 때 튕기기 시작했다. 큰 마음을 먹고 아이들에게 "오늘 엄마랑 놀까?"하고 이야기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시큰둥했다. "오늘은 할머니랑 놀 거야.", "아니, 지금은 혼자 놀고 싶어.", "난 동생이랑 노는 중이야. 이따 엄마랑 놀아줄게."라는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큰 맘먹고 이야기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마냥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달려갔다. 아이는 진심이 아닌, 포장된 마음을 알아채는 기가 막힌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 모양이다.


  어쩌면 내게도 그런 감각이 있었는지 모른다. 진심이 아닌 마음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그런 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알 때, 그때는 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언제 그런 감각을 잃어버렸는지, 언제 진심을 포장하기 시작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잃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내 안에 진심을 알아채는 아이들이 불편했던 것이다. 내 안에 진심을 포장하지 않는다면 내게도 그런 감각이 되돌아올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진심을 다른 것으로 포장하는 기술을 습득하면서 완성되는 것일까? 


  나의 진심을 알아채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아이와 나의 간극은 더 멀어지고 말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이런 태도로 감각이 극도로 발달해서 눈치로 성장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엄마 10분만 쉴게."를 이야기해야겠다. 좀 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진심을 담아 거절하는 법을 배울 차례인가 보다. 거짓된 마음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법을 배우고 익숙해질 것이 아니라, 예쁜 그릇에 담아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음을 깨닫는다. 나의 진심이 상대를 아프게 한다 할지라도 진짜가 아닌 마음은 들통나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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