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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Dec 09. 2020

평생 끓여줄게

소울푸드가 라면이라도 말이야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먹고 싶다고 생각나는 음식은 반드시 먹는 편이다. 문득 어떤 냄새에 이끌려서 떠오르는 음식이 있기도 하고, 몸이 아플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식이 있다. 음식과 나 사이의 특별한 추억 때문에, 문득 그 음식이 먹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음식에 진심인 편이다.


  내가 어릴 때 피자나 햄버거는 귀한 음식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당시 금액이 생각나진 않지만, 햄버거를 먹어봤다는 경험이 귀한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롯데리아에 갔던 선생님의 뒷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처음으로 경험했던 햄버거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피자를 사 먹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요즘에서야 배달이 매우 일반적인 일이 되었지, 20여 년 전만 해도 배달이 그리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퇴근하는 아버지의 손에 매달려 있는 시장 통닭이 더 흔한 광경이었다. 초등학생이었을 그 시절, 생일 파티에 가면 삼삼오오 모여있는 엄마들이 탕수육을 직접 튀기셨다. 그런 시절에 엄마는 피자를 직접 만들어 주셨다. 넓적한 전기 프라이팬에 반죽을 올리고, 그 위에 김치와 소시지, 치즈를 올리셨다. 별 것 아닌 토핑이었지만 어찌나 매콤 달콤 맛있었는지 강렬한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소울푸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기 마련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국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물이 온갖 진액이 다 들어간 보양식이라고 사골국을 끓이셔도 먹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를 낳아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산후조리 기간에도 건더기만 쏙쏙 골라먹었다. 미역국을 벌컥벌컥 마셔야 젖이 도는 것이라고 시어머니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소용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긋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씀드리곤 했다. "어머니, 저는 국물은 안 좋아해요. 차라리 그냥 물을 마실게요." 이런 내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마는, 그 정도로 나는 국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국물까지 싹싹 먹어버리는 음식이 있다. 열이 펄펄 나거나 몸살이 나서 꼼작도 할 수 없을 때,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이면 없던 입맛까지 살아났다. 내게 추어탕은 몸살감기약 같은 음식이 되었다. 대학원에 다닌 시절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다닌 기억이 없다. 학교와 과외, 학원 업무에 치여서 이동 중에 김밥 한 줄을 먹거나 빵을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그러다가 면역력이 떨어졌고 A형 간염이 찾아왔다. 학교를 휴학하고, 약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하며 치료를 했다. 간 수치가 낮아져서 퇴원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때 살이 많이 빠졌었는데 회복되는 것은 더디기만 했다. 가뜩이나 식탐이 많지 않은데, 입맛은 더 없어졌다. 엄마는 그런 내게 추어탕을 내미셨다.


  원기회복이라는 경험을 하고 나니 몸이 아플 때면 추어탕이 생각났다. 몸이 으슬으슬하거나, 입맛이 없을 때, 뭔가 허전하고 기운이 없을 때 추어탕이 생각났다. 그렇게 추어탕 한 그릇이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는 그 흔한 추어탕 한 그릇을 먹기가 어려웠다. 감사하게도 몸이 그리 아픈 날이 많지 않았는데, 어느 날 꽤나 크게 몸살을 앓았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던 선교사님께 '이런 날엔 추어탕 한 그릇을 먹어야 하는데...'라며 지난 나의 소울푸드의 과거를 읊었더랬다. 다른 때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선교사님께서는 며칠 뒤 저녁식사에 초대하셨다. 그리곤 꽁치 통조림으로 추어탕처럼 만드셨다며 한 그릇을 내미셨다. 추어탕과 원재료부터 다른 것이었지만, 한 입 먹는 순간 추어탕을 처음 먹었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온 몸이 따뜻해지고 원기가 돌았다.


  누군가에게 소울푸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일까. 소울푸드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과 환경이 한정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내게도 필리핀에서 먹었던 꽁치 통조림 탕은 추어탕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원재료부터 다른 맛이었더라도 추어탕과 다를 바 없는 음식이었다. 어쩌면 사람에게 소울푸드라는 것은 맛과 향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음식이 소울푸드가 되기까지 함께 한 여정과 기억, 추억이 담긴 역사가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일곱 살 딸은 필리핀에서 본격적으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 살 때만 해도 매운 음식은 입에 못 대던 녀석이 필리핀에 도착하자 진라면과 너구리, 신라면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어린아이에게도 고향을 떠난 헛헛한 마음이 있었던 걸까. 우리 가족은 한국음식이 그리워지는 날, 편하게 한국음식을 먹고 싶은 날엔 어김없이 라면을 끓였다. 그 모든 분위기가 나의 일곱 살 딸에게도 고스란히 넘어간 모양이었다. 입술이 빨개지도록 면발을 먹고, 급기야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신공을 보였다. 그렇게 온갖 한국 라면에 폭 빠진 아이는 입맛이 없을 때마다 라면을 찾기에 이르렀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먹을 게 많아졌다. 필리핀에서는 먹을 수 없었던 온갖 음식들을 먹었다. 고기도 질릴 때까지 먹었고, 스테이크, 해물찜, 생선회, 치킨, 자장면 등을 맘껏 먹었다. 물론 나의 소울푸드인 추어탕도 몇 차례 포장해와서 먹었다. 그동안 먹지 못한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음식을 찾아 먹었다. 드디어 한국 음식의 한이 풀려갈 무렵 딸아이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엄마, 나 라면 먹으면 안 돼?" 지금의 딸아이에게 소울푸드는 라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루는 아이에게 음식 랭킹을 시도해보았더랬다. "넌 고기가 좋아, 떡볶이가 좋아?", "그럼 떡볶이가 좋아, 볶음밥이 좋아?", "오~그럼 마시멜로우가 좋아, 우유가 좋아?", "알겠다! 그럼 우유가 좋아, 떡볶이가 좋아?", "마지막이야! 떡볶이가 좋아, 라면이 좋아?" 아이에게 제일 첫 번째로 자리 잡은 음식은 라면이었다. 그러니 아이에게 온갖 산해진미를 내밀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라면을 둘러싼 아이의 추억과 기억을 함께 더듬어보고 싶다. 조금 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첫맛과 그 맛을 둘러싼 그 날의 기억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다 맛있다는 딸아이에게 나는 평생 라면을 잘 끓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면을 둘러싼 온갖 건강 이슈를 차치하고, 아이가 엄마가 되고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언제든지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 지치고 입맛이 없는 그 어느 날, 자신이 한 음식 말고 남이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어 지는 그 날. 아이가 참 사랑하는 그 맛을 언제든 끓여주고 싶다. 지금은 성장기인 딸아이에게 제한하는 음식이지만 훗날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필리핀의 추억과 함께 면발 한가닥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고로 음식은 사람에게 맛으로만 기억되는 게 아닌 법이니까. 음식 한 그릇에 쏟아진 배려와 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추억과 기억이 녹아져 있고, 사람을 버티게 하는 강한 그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소울푸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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